잘 나가는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화 되는 일은 흔하다. 영상물의 히트는 다시 원작 소설의 인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미디어셀러’ ‘스크린셀러’는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제1 법칙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출판가에선 인기 드라마나 영화를 소설로 출간하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KBS 2TV의 인기드라마 ‘연애의 발견’이 최근 예담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소설로 출간됐다. 예담의 정지연 편집자는 9일 “드라마에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주인공들의 세세한 심리묘사가 소설에서는 가능해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설화 작업은 과거에도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출판시장에서 의도성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도한 건 지난해부터라는 게 출판계의 설명이다. 군소 출판사는 물론 21세기북스, 황금가지, 위즈덤하우스 등 제법 규모가 큰 출판사들도 뛰어들어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21세기북스는 지난해부터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로맨스가 필요해’ 등을 소설로 내는 등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영화 ‘명량’을 소설로 냈다. 황금가지는 올 초 영화 ‘역린’을, 지난 9월엔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잇달아 소설로 선보였다.
21세기북스의 윤근석 편집팀장은 “출판 콘텐츠의 핵심은 스토리”라며 “드라마나 영화에서 관객 및 시청자와 호흡하며 검증된 스토리를 출판으로 끌어오자는 시도에서 영상물의 소설화 작업이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출판계가 어려우니까 성공한 영화나 드라마를 가져오면 새로운 소비 계층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도 있다”며 “이런 미디어믹스 작업을 위해 전담팀도 꾸렸다”고 덧붙였다.
영상물의 소설화는 원작을 쓴 극작가에 소설가가 붙어 2인1조로 협업하는 게 일반적이다. 소설 ‘연애의 발견’이 정현정 극본·오승희 소설의 공저로 나온 것이 그런 예다.
윤 팀장은 “드라마 쓰는 사람과 소설 쓰는 사람의 문법은 다르다. 그런 게 협업을 통해 믹스 되면 윈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극작가는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매기 위해 어떤 갈등요소가 필요한지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있고, 소설가는 그런 갈등 요소를 언어로 풀어내는 데 있어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영상 작업과 출판 작업이 동시에 전개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황금가지가 낸 ‘역린’은 처음부터 영화와 책 출간을 함께 기획했다.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부분을 소설 1권에서 먼저 보여주고, 영화가 끝난 후 2권을 냈다. 황금가지 김준혁 주간은 “영상과 출판이 함께 기획되면 투자 받기도 쉽고, 공동 마케팅도 가능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에서도 선호한다”고 말했다.
성적은 어떨까. ‘응답하라 1997’ ‘로맨스가 필요해’ 등이 1만∼2만부가 팔렸는데, 인문서가 초판 2000∼3000부를 넘기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히트 영화·드라마를 소설로… ‘원작소설’ 아닌 ‘원작영상’의 시대
입력 2014-11-10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