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랫동안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라는 죄목으로 억류해온 미국인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를 8일 전격 석방했다. 미국 정부는 두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특사자격으로 평양에 보냈다. 북한은 지난달 21일에도 6개월째 억류했던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을 석방했었다.
미국인 3명의 석방 과정이나 배경을 살펴보면 빡빡했던 북·미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흐름을 느낀다. 우선 클래퍼의 비중 때문에 그렇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칭한 이래 평양에 간 최고위급 정보관리다.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연방수사국(FBI) 등 군까지 포함한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클래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수시로 만난다. 그가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보내는 대통령 일일보고(Presidential Daily Briefing)는 최고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과 분석이다. 그런 인물이 평양에 갔다 온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핵 협상과는 무관한 인도적 차원의 방북이었으며, 대북정책 변화와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미가 방북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당국 간 실질적인 대화는 이뤄진 것이다. 현재까지 클래퍼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정보기관 총수가 북한 당국자와 나눈 얘기는 사실상 북·미 간 최고위급 간접대화라고 할 수도 있다. 최소한 상대방 의중을 직접 느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 석방을 위해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나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의 방북을 허용했을 때 ‘정부와 상관없는 인도적인 일’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래서 정부 관리를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인도적 사안’이라고 제한을 두긴 했지만, 이번에는 특사 자격으로 북한 이슈를 다루는 데 실질적으로 가장 비중이 큰 관리를 선택해 보냈다.
지난달 파울을 석방한 직후 백악관과 국무부는 브리핑에서 북한을 DPRK(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라고 부르며 환영했다. 예의를 갖춘 아주 이례적인 호칭이었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을 항상 ‘North Korea’라고만 부른다. 이후 북·미 간에는 석방 협상이 있었고 클래퍼가 전격 방북한 것이다. 이번에는 국무부는 물론 오바마도 직접 나서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이 같은 정황들은 북·미 관계가 어떤 변곡점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미 관계가 이런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주 중 잇단 다자회의에서 미·중, 중·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한반도 주변국 정상들이 마주앉아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다.
주변 강국들이 은밀하게 각자의 국익을 전제로 한반도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투명성 원칙만을 내세워 실질적인 남북대화를 주도하지 못하거나 북·미 간 대화내용을 어렵사리 취재해 알아내는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 청와대와 외교안보팀은 남북관계에 대한 상황관리를 진정으로 잘하고 있는가.
[사설] 靑·외교안보팀, 남북관계 상황관리 잘하고 있나
입력 2014-11-10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