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사헌부와 요즘 검찰

입력 2014-11-10 02:10

조선 초기의 문신 권근(1352∼1409)은 ‘상대별곡(霜臺別曲)’이란 노래를 지어 사헌부(司憲府)를 예찬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권근은 경기체가 형식의 이 가요에서 ‘아, 청렴한 그 모습이 어떠한가/ 영웅호걸 당대의 인재들/ 나를 위시하여 몇 사람인가’라고 했다. 그 자신도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을 지냈으니 가히 자화자찬이라 할 만큼 조직 자부심이 드높았다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헌부는 권위와 위상이 자못 대단했다. 경국대전은 사헌부 직무를 ‘백관(百官)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억울한 일을 풀어주고 협잡을 단속한다’고 규정했다. 사헌부는 최고위직 대사헌이 종2품으로 1품 재상만 5명이던 의정부에 비하면 직급이 낮았지만, 사헌부 관원인 대관(臺官)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당대의 권신 한명회도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된 바 있다.

사헌부의 근무기강과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상관이 출근하면 하관이 뜰까지 나와 영접했고, 길을 갈 때도 직급 순서대로 걸었다. 회의나 공무의 시작과 끝, 심지어 차를 마실 때도 정해진 격식에 맞춰야 했다.

대관들은 조정 회의 때 다른 관료들보다 먼저 들어갔다가 회의가 끝나면 다들 나간 후 물러났다. 사헌부 내부 비리에도 추상같아서 대사헌이라 할지라도 허물이 있으면 즉각 탄핵했다. 태종 때 대사헌 안성은 데리고 있던 기생이 부친상을 당했는데도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사헌부는 갑오개혁 때 폐지되고 오늘날 검찰이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대사헌 격인 김진태 검찰총장이 최근 간부회의에서 대관을 예로 들며 구성원들의 신중한 처신을 주문했다. 그는 “대관의 삶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지만 그 정신과 자세는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바람 잘 날 드문 검찰 상황을 보면 내심 옛 사헌부의 위풍당당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대관들은 주연(酒宴)이 있으면 “즐겁도다, 즐겁도다”라고 기세 좋게 상대별곡을 불렀다는데, 요즘 검사들의 술자리에선 ‘자조별곡(自嘲別曲)’ 노래만 들리는 것이 아닌지.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