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품고 웃는 폴 매카트니… 렌즈로 기록한 ‘따뜻한 날들’

입력 2014-11-11 02:44
남편 폴 매카트니와 아기 메리. 대림미술관 제공
린다 매카트니. 절친했던 에릭 클랩튼이 찍었다. 대림미술관 제공
비틀즈의 간판 스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 대림미술관 제공
런던 애비 로드를 걷는 비틀즈 멤버. 대림미술관 제공
비틀즈와의 결별이라니. 스물일곱의 폴 매카트니는 와르르 무너졌다. 결혼한 지 일년도 되지 않았던 시점. 그는 스코틀랜드의 농장으로 도망치듯 숨어들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면 위스키부터 집어 들었다.

“린다가 저를 살렸어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큰 힘이 되었죠.”(‘폴 매카트니, 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 26쪽)

린다 매카트니(1941∼1998)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국내 처음이다. 그는 1960년대, 70년대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록 스타 폴 매카트니의 첫 번째 아내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명인사의 아내이기 전에 그 스스로 20세기 대중음악사에 편입된 사진작가였다. 비틀즈, 에릭 클랩튼, 짐 모리슨, 롤링 스톤즈 등 전설의 뮤지션들이 그녀의 렌즈를 통해 재해석됐다.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에서 관람객을 먼저 사로잡는 건 아내의 시선, 엄마의 시선이다. 딸(헤더) 하나를 둔 싱글맘이었던 그는 비틀즈 사진작업이 인연이 돼 폴 매카트니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메리, 스텔라, 제임스 등 새 생명이 태어났다. 전시된 사진들은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거느린 한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폴 매카트니에게 1970년대는 뮤지션으로서 ‘고난의 시대’였으나, 아내 린다와 자식들이 있었기에 스코틀랜드 농장에서의 그 시절은 전시의 부제처럼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이었다.

엄마만이 포착할 수 있는 순간적 장면들이 미소 짓게 만든다. 자유스런 공기가 가득한 목장을 배경으로 찍은 ‘아, 저 순간!’ 하는 훈훈하고 유머스러한 장면들이 인상 깊다. 아기 메리를 털옷 안에 품고 카메라 앞에선 아빠 폴 매카트니의 눈빛은 행복에 젖어 있다. 아들과 거품 목욕을 하는 장면은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고 찍었을 듯 하다.

중장년들에게는 린다 매카트니가 1960년대 후반 사진작가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에 찍은 뮤지션들의 모습이 더 울림을 가질 수 있겠다. 비틀즈 멤버 중 린다와 폴 매카트니 커플보다 더 유명했던 부부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녹음실에 찍은 사진이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린다 매카트니와 절친했던 에릭 클랩튼이나 짐 모리슨은 거꾸로 린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기억해야 할 린다 매카트니의 모습은 또 있다. 그는 단순히 유명 뮤지션을 찍는 사진작가를 넘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한 사회활동가였다. 당시 영국에서 문제가 된 광부들이나 이주 노동자들의 피곤한 얼굴을 찍은 사진들이 그런 것들이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양의 간, 정육점에 걸린 도축된 동물들 사진에선 채식주의자이자 동물권리보호운동가였던 그녀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스타를 남편으로 둔 탓에 유명세를 치러야 했던 그녀는 거리를 활보하며 사진을 찍지 못했다. 눈에 띄지 않게, 때로는 차안에서 세상을 찍어야 했다. 폴 매카트니를 찍으려고 몰려들었던 팬들의 모습이 린다의 카메라에 잡힌 건 그런 이유다.

사진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또 남편과 결성한 밴드 윙스의 뮤지션으로 살았던 사람. 그러면서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로 뜨겁게 생을 살다 간 여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2011년 독일 타쉔(Taschen) 출판사에서 낸 린다 매카트니의 작품집(Life in Photography)을 보고 기획됐다. 올해 폴 매카트니의 한국 공연이 무산된 터라 아쉬웠을 중장년 팬들이라면 더욱 관심이 갈 듯하다. 전시는 내년 4월 26일까지(02-720-0667).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