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유머와 권위, 소통과 불통

입력 2014-11-10 02:20

지난달 28일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야당 의원이 ‘소통’을 주제로 질의하면서 취임 후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를 물었다. 국감장에 있던 한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모두 23차례”라고 답변했다.

당시 방송을 통해 이 답변을 바라보던 기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중 4번이 담화문 발표를 포함한 국내 기자회견이고, 나머지는 외국 정상과의 공동기자회견”이라는 부연설명을 들은 뒤에도 찜찜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은 지난 1월 6일 신년기자회견 단 한 차례다.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천명했던 자리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는 3차례였다. 지난해 3월 4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호소한 담화, 올해 2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 5월 19일 ‘국가 대혁신’ 담화 등이다. 23차례 중 나머지 19번의 기자회견은 각국 정상회담 계기에 외교 관례에 따라 하도록 돼 있는 자리였을 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을 갖는 식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 청와대 수석이 구태여 박 대통령과 외국정상의 공동기자회견 횟수까지 더해서 답해야 했을까.

당시 국감에선 또 관심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실명 나이 이력까지 알만한 유명 여성 트레이너의 청와대 2부속실 3급 행정관 재직 사실을 놓고 ‘국가기밀’이라며 끝내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날 청와대 김기춘 실장은 “우리 박근혜정부는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 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공기업행(行)을 따져 묻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치권 특히 야권이 청와대를 공격할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 ‘불통(不通)’이다. 지난달 국감에서 보여준 청와대 참모들의 이런 답변들이 바로 국민과 실제 청와대 참모들의 인식의 괴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언제나 그렇지만 청와대는 올 들어 세월호 참사, 각종 인사파동, 여야 대치정국 속에서 모든 뉴스의 초점이 됐다. 정치권과 언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청와대를 바라봤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소재를 묻는 질의에 “모른다”고 밝힌 김 실장의 지난 7월 국회 답변이다. 이 애매한 답변이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여진은 한동안 계속됐다. 물론 박 대통령을 위하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오히려 국민에게 박힌 청와대의 ‘불통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청와대 내의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와 권위주의, 중압감이 청와대 참모들의 여유와 유연함을 갈수록 떨어뜨리지는 않는지, 또 이런 딱딱한 분위기가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국감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정치엔 유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타협과 협상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할 때, 유머는 이런 정치를 한결 수월하게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금 청와대 참모들에겐 유머가 필요할 듯하다. 유머는 여유가 있어야 자연스레 생겨난다. 소통도 반드시 필요하다. 여러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때론 직접 부딪히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을 청와대 참모들이 먼저 정치권과 국민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유머와 권위는 병립이 가능하고, 소통과 불통의 차이 역시 크지 않다. 박근혜정부 2년차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청와대는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