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78세 ‘성경 암송의 여왕’ 황신애 권사

입력 2014-11-10 03:29
지난 6일 경기도 화성에서 만난 ‘성경 암송의 여왕’ 황신애 할머니. 황 할머니는 “성경 암송에 도전하고 싶다면 문장이 길지 않고 내용도 익숙한 게 많은 시편부터 외워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화성=강민석 선임기자
황 할머니의 닳고 닳은 성경책 모습. 화성=강민석 선임기자
할머니는 성경 구절을 암송해달라는 요청에 요한복음 2장을 들려주었다. 요즘 사용하는 개역·개정판이 아닌 ‘옛날’ 성경을 외운 것이어서 표현이 몇 군데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내용은 정확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암송의 속도였다. 아이돌 그룹의 래퍼처럼 빠른 속도로 ‘말씀’을 쏟아냈다.

성경을 암송한 이는 경기도 수원 오목천감리교회 권사인 황신애(78) 할머니. 황 할머니는 지난 8월 감리교전국부흥단이 주최한 연합성회에서 ‘암송 무대’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30분 넘게 성경을 암송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황 할머니는 언제부터, 무슨 이유에서 성경 암송을 시작한 걸까. 지난 6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황 할머니의 자택을 찾아가 사정을 들어봤다. 그의 ‘암송 역사’가 시작된 것은 약 50년 전 대전에서 열린 한 부흥회에 참석하면서부터였다.

“저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어요. 못 배운 게 한(恨)이 된 사람이죠. 그런데 당시 부흥회 강사님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공부를 많이 못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성경을 자주 읽으면 대학교 나온 사람보다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 얘길 듣고 나니 성경을 한 번 암기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읽은 성경 속 한 구절도 암송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하박국 2장 2절 말씀이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황 할머니는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뛸 때도 손바닥에 성경을 적어놓고 뛰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고. 계속 고민하다 보니 이런 결론이 나오더군요. ‘아, 말씀을 마음에 적어놓으라는 뜻이구나. 성경을 외워보라는 의미구나.’”

그때부터 황 할머니는 틈날 때마다 성경을 외웠다. 외출할 때면 성경구절을 적은 쪽지를 가지고 다녔다. 버스를 타면 쪽지를 보며 말씀을 암기했다. 집안일을 할 때도 머릿속엔 온통 성경 생각뿐이었다. 현관문 냉장고 싱크대 화장실 등 집안 곳곳엔 성경구절을 적은 종이를 붙여놓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황 할머니 방에 있는 화장대 옆엔 이사야와 로마서 구절을 필사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성경을 읽다보니 문장마다 리듬이 있더군요. 무엇보다 내용이 정말 재밌었어요. 가령 창세기 2장이나 3장을 읽으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때의 장면이 펼쳐져요. 요즘은 요한복음 3장을 암기하고 있어요. 24절까지 외웠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옛날처럼 빨리 안 외워지네요(웃음). 하지만 지금도 무대만 마련되면 2시간은 거뜬히 성경을 암송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황 할머니가 요즘 즐겨 암송하는 구절은 무엇일까. 황 할머니는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 20∼21절 말씀”이라고 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을 묵상하면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주님 앞에 서서 인사를 드리겠죠. ‘주님, 제가 왔습니다’라고(웃음).”

황 할머니의 '성경 사랑'은 암송에만 그치지 않는다. 필사도 한 차례 했으며 50회 넘게 성경을 통독했다. 황 할머니에겐 장성한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는데, 자식들 역시 어머니를 닮아 성경 읽기가 취미란다. 손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며느리는 황 할머니의 '암송 경쟁자'다. 며느리는 성경 구절을 프린터로 출력한 뒤 비닐로 코팅해서 갖고 다닐 정도로 암송에 열심이다.

황 할머니는 "매일 저녁 TV 연속극을 볼 때만 성경 생각을 잠시 잊을 뿐 나머지 시간엔 계속 성경을 읽고 암송한다. 암송은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50년 전 부흥강사가 했던 말, '성경을 읽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사실이더라고요. 성경을 계속 읽다보니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저보고 그래요. '할머니 정말 해박하시네요' '할머니는 어디 대학 나오셨어요?'…. 무엇보다 성경을 외우고 있으니 목사님 설교를 들을 때 남들보다 더 빨리 이해하게 돼요. 더 큰 은혜를 받는 거죠. 다른 성도들한테도 암송을 권하고 싶어요(웃음)."

화성=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