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일본형’ 장기불황은 없을 것이나

입력 2014-11-10 02:02 수정 2014-11-10 11:28

찬바람은 불어오고 한 해도 슬슬 기우는데 여기저기서 삐거덕거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거저 해주겠다던 학교급식과 아동보육은 비용부담을 누가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나는 모르겠다’는 목소리만 커지고, 경기는 하루하루 힘을 잃고 있다고들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지난달 31일 일본은행이 금융완화정책을 확대·강화해 ‘엔저 공습’ 불안감이 솟구치고 있다.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은 3분기에 벌써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2.3%)로 돌아섰고 공세적 엔저 탓에 감소 폭이 더 커지리란 비관적 전망이 쏟아진다.

올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급격한 소비경색 탓에 크게 위축됐던 성장률은 3분기에 전 분기 대비 0.9%로 4분기 연속 0%대를 기록했다. 전년 같은 분기 대비 성장률도 올 1∼3분기 ‘3.9→3.5→3.2%’로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저성장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비관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실적도 올 들어 곤두박질치고 있다. ‘엔저 쓰나미’ ‘저성장 구조’ ‘디플레이션 함정’ ‘일본형 장기침체’ 등의 위기론이 떠벌려지듯이 부상하고 있다. 경제주체들은 확실히 주눅이 들어가는 분위기다.

지난 3일 한 언론사는 전문가 10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한국도 일본식 장기불황 온다’ 81%”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 매우 높다’와 ‘거의 없다’의 응답자는 각각 16명, ‘다소 있다’가 65명으로 대부분이었으니 ‘일본형 장기불황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정도가 정확한 분석이겠다.

최악의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전망컨대 한국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의 장기불황이 시작되던 때의 디플레이션 모습은 가위 급전직하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 대도시 주택은 반값 밑으로 내려앉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89년 말 3만8915엔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닛케이지수는 9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일본 내각부 자료에 따르면 잃어버린 20년이란 장기불황 기간 중 공중분해된 주식과 부동산 손실액은 1500조엔이다. 한 번 추락한 주가·부동산가격은 좀체 반전되지 못했고 20여년을 끌어왔다.

이에 비하면 최근 한국의 경제지표들은 안정적이다. 예컨대 부동산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격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지만 이는 그 이전에 부풀려졌던 가격이 안정화돼 가는 차원이다. KB부동산 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 17개 시도의 지난 10월말까지 주택매매가격 평균 상승률은 1.7%다. 물가상승률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가격 폭락과는 거리가 멀다. 물가상승률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이 되레 고무적이다. 주가 역시 오르내림은 이어지고 있지만 대략 1900∼2000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일부 경제주체들이 지금의 주택가격 동향에 불만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살려 경기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다소 엉뚱한 계획을 내놓으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구름 잡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경기를 살리겠다는 최경환 경제정책팀의 행보는 사실상 과도하게 위기를 조장하는 위기론 못지않게 장밋빛 전망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떠벌리기식 경제정책에 다름 아니다.

엔저 위기론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원·엔 환율은 90년대 중반 외환위기 이전과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엔 100엔당 700∼800원대를 유지했었다. 올 들어 원·엔 환율이 20% 이상 급락하고 있음은 충격적이지만 과거의 경험을 곱씹어보면 극복방안은 분명 있을 것이다.

위기라고 소리치거나, 정반대로 조금 과도한 성장률 전망치를 앞세우며 낙관론을 펴는 것 모두가 떠벌리는 몸부림일 뿐이다. 경제주체들이 주눅 들지 말고 담대하게 차근차근 각각의 자리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겠다면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서둘러야 한다. 떠벌리기만 해서는 경제는 결코 살아나지 않는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