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ㅂ자 돌림병’의 먹이사슬

입력 2014-11-10 02:20

누구에게나 정녕 못 참는 것이 있다. 당신에게는 무엇인가? 나는 ‘부정 부패 비리 부실’을 못 참는다. 이것들을 나는 ‘ㅂ자 돌림병’이라고 부른다. 모두 ‘ㅂ자’로 시작하고, 한번 발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때문이다.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근자에 들어 돌림병이 외려 악화된다. 주로 대형 업계나 정치권의 문제인 줄 알았더니 행정부 곳곳, 해경, 경찰에까지 병증이 심각하고 작은 업계에도 속속 스며든다. 주로 건설이나 세무회계에 있는 줄 알았더니 교육계, 학계, 언론계는 물론 의료와 복지계에도. 말단의 개인 비리인 줄 알았더니 모든 층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낙하산, 변칙 채용과 승진 등 인사 곳곳에까지 침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화병이 날 지경이다.

돌림병은 병리 현상만 고치려 해서는 절대로 고칠 수 없다. 본보기로 몇몇의 목을 날리거나 잔챙이들을 친다고 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전염 방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그 기세는 왕성해지고 수법은 대담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사악함에 대해 점점 뻔뻔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생각이 꺾이고 어떻게든 그 부패의 먹이사슬에 하나라도 차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지금이 딱 그렇지 않은가? 한마디로 끈끈한 파리지옥 같은 먹이사슬이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다들 눈치를 본다. 정공법이 아니라 편법과 반칙을 통해서라도 그 사슬에 끼어들려 한다. 어떻게 해서든 권력의 특혜를 이용하려 들고, 권력에 기생해서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이 자리에서, 한 탕 해먹으려 든다. 한숨이 난다.

‘ㅂ자 병’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인간 사회의 속성상 부정·부패·비리·부실은 일어날 수 있는 병리 현상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 주류의 생존법과 번성법이 되거나 사람들이 그렇게 여길 만큼 ‘돌림병’이 되는 경우다.

‘돌림병’은 병의 원인을 없애야 그나마 막을 수 있다. ‘ 투명성, 올바름, 건강함, 일관성, 보편성’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체계의 문제로 봐야 할 때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이치를 생각할 때다. 돌림병으로 우리 사회가 완전 무너지기 전에, 부디 정신 차리자.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