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건 바보짓이여. 돈만 생각하면 못할 일이지. 20∼30년 전만 해도 200마지기(4만평) 쌀농사면유, 소작농 포함해서 10가구가 처자식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새끼 대학교육까지 시키고 시집장가도 보냈어유. 인자는 먹고살기도 벅차네유.”
지난 6일 세종시 장군면 추수 현장에서 만난 전업농 손복현(67)씨는 “쌀농사엔 희망이 없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손씨는 대부분이 쌀농사를 짓는 100가구 남짓한 이 마을의 ‘지주’ 격이다. 쌀농사를 짓는 4만평 중 2만평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다. 3월부터 11월까지 1년의 3분의 2 기간을 쌀농사에 전력을 쏟아붓고 손씨가 손에 쥐는 소득은 연간 9000만원 수준이다. 마을 주민 대다수는 평균 1만평 수준의 땅을 빌려 짓는 임차농으로 연간 소득은 손씨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쌀농사가 기계화돼서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대다수가 ‘목구멍이 포도청’ 수준이야. 풍년이라고? 올해 손에 쥐는 돈은 더 적어졌는데?”
지난해 5만5500원이었던 공주농협 미곡처리장(RPC)의 80㎏ 기준 벼 수매가는 올해 5만3000원으로 떨어졌다. 농협이 100% 수매할 수 없어 수확량의 절반 이상은 민간유통업자에게 넘기는데 그 시세는 5만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그나마 민간업자들은 쌀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며 쌀을 사들이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
쌀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인건비, 농기계 가격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손씨가 11월 넘어 뒤늦은 추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5년 전 5500만원을 주고 산 콤바인 기계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300만원의 수리비도 수리비지만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콤바인 가격은 해마다 100만원씩 올라 지금은 6000만원이 넘는다.
손씨네 옆 논 주인인 백승순(55·여)씨는 “농사 지어 먹고 살만 하시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남편이 3년 전 퇴직한 뒤 전업농으로 변신해 5000평 규모에 멜론·검은콩·쌀농사를 섞어서 하고 있지만 연간 소득은 50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백씨는 “농기계가 없으니 기계 임차해야지, 추수 때 사람 빌려야지, 2000평 쌀농사 지어서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정도”라며 “땅 놀리기 싫어 쌀농사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손씨는 농민이 출자해 만든 농협이 좀 더 높은 수매가를 매겨야 민간유통업자도 가격을 올린다며 농협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직후 만난 ‘고맛나루 공주시 RPC’ 이한석(46) 대표 역시 “풍년이 괴롭다”고 말했다. 올해 1만2000t을 수매할 예정인데, 이것을 되팔 거래처 확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맛나루’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수익을 내려 애쓰고 있지만 출범 이후 3년 내내 적자를 겨우 면할 정도다. 이 대표는 “우리는 5만3000원으로 수매가를 잡았지만 남부지방 농협 RPC들은 5만원으로 잡고 있다”며 “쌀 수요는 줄어드는데 풍년이 되면 농민도 농협도 모두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쌀시장 개방 파고가 농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손씨는 그래도 쌀농사는 포기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우리 농업에서 쌀은 중군(中軍·진영 한가운데 자리 잡은 중심부대)이여. 중군이 중심을 못 잡으면 농업이 무너져. 정부와 농민, 농협이 지혜를 모아 어떻게든 지금보다 나아져야지.”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위기의 쌀농가] 들판은 누렇게 익고 농심은 까맣게 탄다
입력 2014-11-08 03:39 수정 2014-11-08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