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계의 핫한 장소는 서촌이다. 서울의 종로구 효자동 통의동 등 경복궁의 서쪽 마을을 일컫는 말이다. 화랑가의 축이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이제 서촌으로 이동한다. 개발이 덜돼 덜 오른 부동산을 찾아, 그래서 보존된 고즈넉한 문화풍경을 찾아서다. 강남에 둥지를 틀었던 몇몇 화랑이 옮겨오기도 했다.
‘서촌시대’의 중심에 대림미술관이 있다. 재계 순위 20위권의 대림그룹이 운영한다. 경복궁이 바로 보이는, ‘도심 속 은일(隱逸)’의 공간적 위치는 지금 보면 매력적이다. 이곳에서 전시하는 외국 작가들은 한결같이 ‘판타스틱(fantastic)’을 외친다. 하지만 2002년 개인주택을 사서 개조해 개관했을 때만 해도 외진 위치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화랑가 하면 인사동 삼청동이었던 시대다. 미술가에서 경복궁의 동쪽과 서쪽의 차이는 서울과 지방만큼의 간극이다. 소장품도 내세울 게 없었다. 대림미술관은 감나무가 있는 가정집을 개조한 소박한 사립 미술관일 뿐이었다. 2004년 문을 연 삼성 리움미술관이 으리으리한 규모, 명품 컬렉션으로 단박에 한남동 시대를 연 것과 대조적이다.
10여년이 흘렀다. 지금 대림미술관은 침범 못할 고유한 존재감을 갖는다. 지난해 관람객은 26만명. 올해는 36만명을 돌파할 기세다. 2010년 이후 관람객은 매년 폭증하는 추세다.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대림미술관은 차별화를 택했다. 단점에 주목했다. 미술관으로선 분명히 작은 규모다. 180평의 전시공간은 그마저도 칸막이가 져서 200호, 300호짜리 유화 대작을 거는 건 무리다. 처음엔 사진전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그러다 2010년 영국 패션계의 거장 폴 스미스의 컬렉션 전시가 대박이 났다. 빈티지 포스터에서 미국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소장품 전시에 관람객은 매료됐다. 미술관 밖 도로까지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보석과 가구 전시도 눈길을 끈다. 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찍은 사진 작품을 보여주는 등 ‘사진+패션+디자인’을 결합한 시도도 신선하다.
미술계 인사는 “그런 작은 공간엔 아기자기한 디자인이나 보석, 사진 작품이 적합했다. 자신에게 맞는 걸 잘 찾아내더라”고 평했다.
이제 떴으니 말이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진·디자인·패션은 주류 미술이 아니라며, 한 수 아래로 취급받던 장르가 아니었던가. 변변한 전문미술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대림미술관은 디자인 분야 종사자나 전공 학생들의 메카처럼 돼 간다.
대림미술관의 성공은 리더십의 힘이다. 오너 3세인 대림그룹 이해욱(47) 부회장이 관장을 겸한다. 방향성을 찾는 데 안착한 그는 직원들에게 경영철학을 전파한다. “미술관은 섬이어서도, 성이어서도 안 된다.” 그의 모토는 모든 직원이 공유하는 가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다가갈까. 큐레이터들은 학생들과 단체 관람을 오면 할인혜택을 주겠다고 미대 교수들에게 일일이 전화한다. 큐레이터 교육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솔깃한 제안을 한다. 뜨겁게 일하는 직원 뒤엔 희망을, 가치를 전파하는 리더가 있었던 것이다.
비즈니스 정글이라는데 미술계라고 다르진 않다. 불안심리는 모방을 부른다. 정답이 아니지만 그게 가장 쉬워서다. 많은 사립 미술관이 비슷한 모델로 가다 적자에 허덕이거나 문을 닫는다. 따라하지 않고, 단점에 주목해 그걸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발상의 전환과 뚝심, 그리고 전 직원이 가치를 공유하는 조직문화. 미술관은 ‘돈 먹는 하마’라지만 이곳은 수익이 난다. ‘답을 내는 조직’의 사례를 대림미술관에서 본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내일을 열며-손영옥] 답을 내는 조직, 대림미술관
입력 2014-11-08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