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쌀농가] 문 열린 쌀시장… ‘내일’이 없다

입력 2014-11-08 02:13
6일 충남 공주시 의당면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직원이 반입된 쌀의 등급을 판별하고 있다. 지난해 풍년으로 쌀이 남아돈 여파가 올해로 이어져 쌀 공급 과잉이 빚어졌다. 공주=구성찬 기자
충남 공주시 의당면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도정된 쌀이 포장되고 있다. 쌀 수요가 공급보다 적어 쌀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쌀 시장 개방이 당장 내년으로 닥쳐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공주=구성찬 기자
정부는 지난달 올해 쌀 생산량 중 신곡 수요량을 넘는 18만t에 대해 시장격리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쌀 부족이나 가격 급등 사태를 빚지 않는 한 해당 물량은 시장에 방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올해 쌀이 그만큼 많이 생산된 것일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4년산 쌀 재배면적은 지난해보다 2.1% 감소했다.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많아져 농사 자체는 풍년이었지만 전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4만6000t(1.1%) 줄어든 것이다. 올해 쌀 공급 과잉의 원인은 지난해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풍작으로 쌀이 남아돌았던 여파가 올해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시장 원리다. 그런데 올해 쌀값 하락을 현장에서 체감하는 농가와 정부의 속내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쌀 시장 개방이 내년으로 닥쳐왔고, 국내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벼농사 의존도가 높은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문제 등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가소득 늘었지만, 쌀 전업농 소득은 하락

최근 통계청은 ‘2013 농가경제조사’에서 지난해 농가소득이 전년 대비 11.3% 증가한 3452만원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모든 농가의 소득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김미복 박성재 연구위원이 통계청 자료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총조사자료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한 ‘농업구조 변화와 농가정체,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경지규모가 7㏊ 이상인 대농 그룹에서는 소득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2003∼2013년 사이 대부분 농가들의 총소득이 상승한 가운데 5∼7㏊ 그룹은 총소득이 3470만원에서 5660만원까지 40% 이상 높아졌다. 그런데 7㏊ 이상부터는 소득변화 추세가 정반대로 나타났다. 7∼10㏊ 그룹의 총소득은 2003년 5090만원에서 2013년 4500만원으로 38.1% 급락했고 10㏊ 이상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영농 규모가 커질수록 소득이 높아질 것이라는 ‘규모화’ 논리가 먹히지 않은 셈이다.

원인은 벼농사 비중에 있었다. 김 연구위원은 6일 “7㏊ 이상 대농은 주로 논벼농가들인데 7∼10㏊ 농가 중 논벼농가 비중은 2003년 42%에서 2013년 40%로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면서 “반면 총소득이 소폭 상승한 10㏊ 이상 그룹은 같은 기간 논벼농사 비중이 54%에서 29%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는 벼농사의 수익성이 다른 품목보다 크게 낮다는 것을 나타낸다. 근본적인 원인은 쌀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적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쌀을 먹는 전체 인구수 자체가 정체 상태인 데다 1인당 쌀 소비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012년 69.8㎏이었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67.2㎏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65.8㎏, 내년엔 64.4㎏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에 닥친 쌀 시장 개방, 고관세율 적용 등은 ‘발등 불’만 끈 격

게다가 국내 쌀 시장은 20년간 미뤄온 개방을 앞두고 있다. 쌀 시장 개방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 당시 20년 뒤 관세화(시장개방)한다고 이미 결정됐던 사항이다. 지금에 와서 이를 되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부는 대신 수입쌀에 대해 513%의 고율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관세가 높게 매겨지면 수입쌀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에 국내산 쌀에 대한 타격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관세율은 우리나라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일단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의 검증절차를 거쳐야 513%가 확정된다.

이를 통과한다고 해도 더 중요한 것은 이 관세율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정부가 참여 여부를 고민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현재 협상 중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개별 국가와의 FTA 등에서 쌀 관세율도 협상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관세율이 낮아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정부는 “향후 모든 FTA에서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 지속 보호할 것”이라는 원칙만 강조하고 있다.



“쌀 농업 정책, 접근 방식·철학부터 바꿔야”

쌀 농업에 대한 지원 정책이 변화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식량 부족을 겪던 시기에 맞춰져 있는 농업 정책의 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도 고민이 깊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쌀이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주식인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쌀 생산은 식량안보, 물가관리 차원에서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시장 상황에 따라 자연스레 진행되는 산업 구조조정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아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농가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도와주는 식으로 기존의 경영·농사 방식을 유지하게 하는 것보다는 시장개방으로 인해 가격이 낮은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고, 국내 소비는 줄어드는 현실을 직시해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1차 산물에 대한 농가의 소득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이나 판매, 가공 등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농경연 김 연구위원은 “전업농의 소득 증가율은 최근 10년간 13%에 불과했던 반면 2종 겸업농은 31.9% 증가했다”면서 “절대 빈곤선 이하 농가에 대해서는 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농업 규모화 정책과 함께 농외소득원을 개발하는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