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복지’ 예산 갈등 커진다

입력 2014-11-07 04:17
어린이집 누리과정(취학 전 3∼5세 아동보육비 지원사업)과 무상급식 등 이른바 ‘무상(無償)복지 시리즈’가 올해 예산 정국에서 논란의 핵으로 등장했다. 이들 사업의 내년도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각 시·도교육청,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사이에 빚어진 다자 갈등은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누리과정의 예산 편성 문제는 공약 파기 논란은 물론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의 소속 정당,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여 예산 정국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파장은 지방에서 시작됐다. 경기도와 경상남도가 내년도 학교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다른 시·도교육청은 국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6일 180여명의 전국 기초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복지비 부담 가중으로 지자체가 파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특히 “정부는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 국가 사무의 재정 부담을 지방에 전가해 지방재정 파산을 초래하고 있다”며 “재정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개 시·도교육청은 지자체와 오히려 대립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줄이더라도 무상급식 예산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오후 대전시교육청에서 긴급 협의회를 갖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진보진영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고, 다른 교육감들은 “교육부가 지방채 추가 발행으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으니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 편성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이 교육감을 제외한 나머지 시·도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중앙정부는 경기도교육청 등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 배제에 강하게 반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재량지출 항목인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면서 법령상 의무사항인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예산 정국에 들어선 여당은 무상복지 논란에 당혹해하면서도 교육예산의 효율적 집행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갈등의 원인은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세수가 부족해서, 재정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라며 “정책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대화와 타협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도 “(홍준표) 경남도지사 말씀의 의미와 파장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고만 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박근혜정부가 대선 때는 누리과정의 국고 지원을 약속하며 생색을 내다가 이제 와서 지방교육청이 이를 부담하라고 떠넘기고 있다”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남혁상 기자, 대전=이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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