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임성수] 공허한 논쟁·말싸움… ‘구닥다리’된 대정부질문

입력 2014-11-07 02:30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향해 미국의 금리 인상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집요하게 물었다. 몇 차례 “그건 제가 잘 모르겠다”던 정 총리는 “질문을 하시려면 원고를 주셔야지 대비를 할 것 아니냐”며 버럭 역정을 냈다. 윤 의원은 “이 정도도 모르냐”고 면박을 줬다. 지켜보던 이석현 국회 부의장은 “총리께선 원고가 사전에 없어도 답변하실 의무가 있다. 윤 의원도 침착하게 질문해주길 바란다”고 말렸다. 금리 논쟁이 순식간에 ‘원고 말싸움’으로 바뀐 셈이다.

대정부 질문은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은 공허한 논쟁이나 말싸움을 주고받기 일쑤다. 의원의 주 무기는 호통치기, 말 자르기 등이다. 내성이 생긴 장관들도 “검토하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을 하거나 아예 작정하고 의원과 한판 붙는다.

대정부 질문은 ‘관객 없는 무대’다. 오전에는 그나마 자리를 지키던 의원들이 오후가 되면 대부분 본회의장에서 사라진다. 같은 날 네덜란드 국왕 일행이 대정부 질문을 보러왔다가 썰렁한 본회의장을 보고 얼마 못 가 자리를 떴다.

제헌국회 때부터 시작된 대정부 질문이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 대정부 질문은 야당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발언대였다. 1995년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대정부 질문 폐지론을 들고 나온 새정치연합 문병호 의원은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본회의가 활성화된 영국에서는 총리와 야당 리더가 장시간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데 우리는 너무 일방적이고 깊이가 없다”며 “총리를 부를 수 있는 회의의 크기를 줄이고, 상임위나 소위에서 세밀하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대정부 질문에서 ‘큰 것 한 방’을 폭로해 주목을 받는 시절은 지났다. 시대가 바뀌면 소통 방식도 바뀐다. 대정부 질문은 이제 낡은 옷이 된 게 아닐까.

임성수 정치부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