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학생 감소 폐교 아픔 딛고 연일 북적이는 미술관으로

입력 2014-11-07 02:59
전남 고흥군 영남면 팔영산 자락에 위치한 남포미술관 전경. 2003년 폐교된 영남중학교를 리모델링해 2005년 개관한 시골 미술관으로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해 고흥의 문화명소로 자리 잡았다.
7일부터 남포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김낙붕의 목가구전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다' 출품작.
전남 고흥은 나로우주센터로 유명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감격의 순간이 아직도 선합니다. 이 우주센터에는 조그마한 전시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고흥군 영남면 팔영로에 있는 남포미술관이 운영하는 미니 미술관이죠. 남포미술관은 2003년 2월 28일 폐교된 영남중학교를 리모델링한 사립미술관이랍니다.

남포(南浦)는 영남중학교를 설립한 곽귀동(1914∼1978)씨의 호입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소학교만 나온 남포는 고향 후배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수산업으로 번 돈으로 1967년 중학교를 세웠답니다. 뒤에는 팔영산이 있고 앞으로는 남해가 보이는 이 학교는 36년간 어렵게 운영되다 2003년 반강제적으로 폐교되고 말았습니다.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남포의 큰아들 곽형수(62·사진)씨는 폐교된 학교를 그냥 둘 수 없어 2005년 2월 19일 남포미술관으로 등록했습니다. 전남 제1호 미술관이죠. 그리고 2월 23일 미술관을 정식 개관하고 관장으로 취임했지요. 곽 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피땀 흘려 세운 학교가 폐교돼 정말 허무했죠. 아버지가 꿈꾼 육영사업의 연장선으로 미술관을 열기로 한 겁니다.”

70여 가구가 사는 한적한 동네에서 개인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소장품 위주로 작은 전시장을 운영했고 지금은 3개 전시실과 체험학습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연간 6∼7차례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작가 초대와 도록 제작 등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답을 팔고 수십년째 키워오던 나무를 팔기도 했답니다.

지역 미술관으로 수준 높은 전시를 한다는 소문이 점차 나면서 관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07년 민화전 때는 20일간 4000명이 보러왔답니다. 주말에는 200∼300명씩 찾아오기도 합니다. 곽 관장의 부인 조해정(58) 부관장이 회계와 사무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고 있지요.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미술계 인사들에게 “전시 보러 오라”며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날도 많습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남포미술관은 고흥의 문화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당선 직후인 지난 8월 23일 가장 먼저 찾은 지역 문화현장이 남포미술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육군 31사단 고흥대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장병과 면회객 동반 방문 시 무료 관람토록 하고 ‘찾아가는 미술관’ ‘미술창작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랍니다.

남포미술관은 그동안 국제환경미술전 ‘세 개의 발톱-인간·자연·환경’ 등 74차례 기획전을 열었고,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등 교육프로그램을 239회 운영했습니다. 오페라 ‘마술피리’ 등 공연도 41차례 개최했지요. 국립소록도병원에 소장품을 무상으로 전시하고 특별기획전 ‘아기사슴-희망을 나누다’ ‘소록도-행복한 웃음으로 피어나다’ 등을 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박승모 박선기 이길래 최태훈 정광식 이재효 성동훈 등 국내 정상급 조각가 7명이 참여하는 ‘움직이는 예술마을’을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요즘 미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시골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술관이 유명세를 탔지요. 이 전시 이후 미술관 옥상에는 이길래 작가의 소나무 작품이 설치돼 관람객을 손짓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연계사업으로 육군 7391부대 순천연대와 팔영산 국립공원에서 ‘찾아가는 미술관’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는 전국 미술관장 회의를 개최하며 입지를 높였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시책에 따라 올해부터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박물관·미술관 가는 날’을,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문화가 있는 날’을 운영하며 관람료 무료 및 할인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곽 관장은 전시가 열리는 날이면 크레인까지 동원해 작품을 야외에 설치하느라 종일 땀을 비 오듯 흘리기도 합니다. 마당의 풀을 뽑고 화장실을 청소하느라 분주하지요. 조명과 전기설비도 그의 몫입니다. 실내 전시작품을 마무리하느라 쉴 틈이 없는 가운데서도 관람객이 찾아오면 어느새 도슨트(전시 해설자)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그는 “가난한 미술관이어서 돈 들어가는 일은 모두 몸으로 때우고 있다”며 “힘들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라 보람이 있다”고 합니다. 별로 수익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질문하면 그는 “미술관은 공공성 있는 공간이자 교육기관이다. 교육에 헌신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고 대답합니다.

곽 관장은 나로우주센터를 찾는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오고 문턱이 높다고 오지 않던 지역주민들의 발걸음도 차츰 늘어나 더욱 보람 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미술에 관심이 많은 지역주민들이 “광주까지 나가지 않고 좋은 전시를 보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때면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이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합니다.

남포미술관은 우주항공시설이 고흥에 들어서고 2020년 고흥과 여수를 잇는 ‘연도교’가 개통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자만을 가로지르는 대교의 등장으로 근처 중소도시들이 문화로 소통하면서 지역 간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미술관의 미래를 열어나갈 계획입니다. 곽 관장은 “남도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올해 개관 10년째인 남포미술관은 겨울맞이 전시로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김낙붕 목가구전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다’를 개최합니다. 한국의 전통미를 기반으로 현대적 실용성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더한 목가구 20여점을 선보입니다. 닭들이 꼬끼오 소리로 아침을 알리고, 확성기가 울려 퍼지는 시골마을의 미술관에 들러 산책도 하고 예술도 음미하는 것은 어떻습니까(061-832-0003).

고흥=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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