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 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소설가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 속 주인공처럼 편의점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소설이 발표된 2003년 말 기준 전국의 편의점 수는 7200개였으나 지난해 말에는 그 3배가 넘는 2만4859개로 불어났다. 국내 도입 초기 담배와 음료수나 사는 줄 알았던 편의점은 택배, 공과금, 이동통신 서비스는 물론이고 범죄 예방 기능까지 수행하는 도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출발해 일본에서 만개한 편의점은 한국에 상륙한 지 25년 만에 인구 대비 세계 최고 밀도를 자랑하고 있다.
◇하루 872만명이 찾는 편의점=국내에 지금과 같은 체인점 형태의 편의점이 문을 연 것은 1989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리아세븐이 미국 사우스랜드사와 기술 제휴해 ‘세븐일레븐’ 1호점인 올림픽선수촌점을 서울 송파구에 열었다. 이보다 앞선 1982년 11월 롯데쇼핑이 ‘롯데세븐’을 개점하는 등 국내에 편의점을 소개하긴 했지만 모두 뿌리내리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국내 편의점의 출발은 일본(1969년), 대만(1979년)과 각각 20년, 10년의 간극이 있지만 당시 고도성장 시기와 맞물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세븐일레븐에 이어 ‘서클케이’ ‘훼미리마트(현 CU)’ ‘미니스톱’ ‘LG25’ ‘바이더웨이’ 등 다른 편의점 체인도 차례로 문을 열었다. 도입 4년 만인 1993년에는 전국 1000호점을 돌파했다. 편의점 선진국 일본과 대만이 각각 도입 6년과 12년 만에 1000호점을 돌파한 것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다.
초창기 편의점 주요 입지는 고학력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가 쓴 ‘편의점 사회학’에 따르면 당시 편의점은 서울 방이동, 목동, 동부이촌동, 여의도, 가락동 등 고학력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개점했다. 현재는 전국 모든 시·군·구 단위에 편의점이 입점해 있다. 최남단 마라도에 2007년 11월 GS25가 입점한 것을 비롯해 2008년 8월에는 울릉도에 훼미리마트가 들어섰다. 2004년 11월에는 개성공단에 훼미리마트를 개점해 현재는 CU로 명칭을 바꿔 운영 중이다.
초기 편의점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로 88서울올림픽 후 달라진 소비 환경을 들 수 있다. 당시는 1980년대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새로운 생활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전 교수는 책에서 “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의 편의점은 이처럼 문화적 개방과 심미적 소비 욕구를 배경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편의점은 서구식 생활문화에 대한 신세대의 선망과 동경을 적절히 반영했던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토착화 역시 편의점의 성공 요인으로 거론된다. 일본 편의점이 1978년 세븐일레븐의 ‘오니기리’(주먹밥) 등장 후 급속히 발전했듯 국내도 삼각김밥이나 김밥, 만두, 도시락 등 우리 식습관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설 수 있었다.
편의점 업계는 IMF 금융위기가 있던 1997·1998년과 2006년 및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점포 수 증가율을 기록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편의점 한 개당 인구수는 205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적은 수준이 됐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한 곳당 하루 평균 고객수는 351명으로 전국적으로 하루 872만여명이 편의점의 문턱을 드나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 홀로 성장’ 추세 지속될까=편의점은 현재 오프라인 유통채널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발표한 9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2012년 2분기부터 전년 대비 줄곧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백화점은 분기별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반복하지만 9월에는 전년 대비 매출이 6.3% 하락했다. 반면 편의점은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 연평균 17% 성장했다. 올 들어서도 매월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이 플러스를 기록 중이다.
편의점이 성장세를 지속하는 것은 인구 노령화 등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소비 패턴이 근거리·소량 구매로 변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 이는 우리보다 앞서 노령화와 1∼2인 가구 증가 추세를 보인 일본의 예를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은 포화 기준이라는 5만점을 돌파한 후에도 증가 추세에 있다. 일본의 지난 9월 말 기준 편의점 수는 5만1363점을 기록했다. 일본 편의점 업계의 연매출 역시 백화점 업계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를 감안할 때 소매업에서 아직 비중이 낮은 국내 편의점 업계의 성장이 예상된다. 기존 업체에 이어 유통 대기업 신세계가 지난 7월 ‘위드미’로 편의점 진출을 본격 선언한 것도 이러한 시장 전망과 무관치 않다.
편의점이 성장을 지속하면서 서비스가 확충되고 그 기능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택배 서비스는 지난해 기준 점포당 월 평균 32.4건 정도 취급되고 물량과 취급 점포 역시 매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데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지자체와의 협약을 통해 ‘아동안전 지킴이집’ ‘여성 안심 지킴이집’ 운영 등 방범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구호품 전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편의점의 구호 기능이 부각되기도 했다.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통합화에 따라 물류 거점으로서 편의점의 역할도 부각되고 있다. 롯데는 모바일 등 온라인에서 주문한 물건을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서 찾을 수 있는 유통 채널 통합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세븐앤아이홀딩스 그룹은 지난달 29일 그룹 내 백화점과 전문점 등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당일 자사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내년 가을부터 수도권에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편의점의 지속 성장을 위해선 가맹점주 등과의 상생 방안도 꾸준히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해에만 4명의 편의점주가 자살하는 등 ‘갑을 논란’이 불거지면서 편의점 출점이 전년 대비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 최저임금 사각지대로 꼽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편의점 업계의 과제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경제 히스토리] 연 성장률 ‘17%’… 거침없는 편의점
입력 2014-11-07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