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69·사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적으로는 나치 점령기 프랑스 보통사람들의 삶, 개인적으론 가족이 부재했던 청소년기의 기억 두 가지로 요약된다. 특히 배우인 어머니는 잦은 순회공연 탓에 자녀들을 돌보지 못했고 작가는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했다.
이 책에는 모디아노의 그런 문학적 DNA를 추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숨어있다. 모디아노의 청년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소설은 ‘발베르 학교’의 동창들에 관한 이야기다. 1940년대 초반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 파리 교외의 기숙사가 있는 고교. 주인공 에드몽 클로드와 친구들의 일상은 그 시기 모든 사내 녀석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무단 외출을 해 교장 선생님에게 호출되고, 밤이면 밧줄을 타고 친구와 기숙사 방을 몰래 빠져나간다.
제목 그대로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은 세월이 흘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소설은 숙명처럼 하나 같이 황폐한 인생 속으로 흘러들어간 등장 인물들의 삶을 옴니버스처럼 보여주는데, 이들을 묶어주는 끈은 훗날 연극배우가 된 주인공 에드몽이다. 그는 순회공연을 다니며 우연히 옛 동창들과 선생님들을 마주친다. 학창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현재의 주변부적 삶은 그래서 더욱 부조리하게 다가온다.
공연을 하러간 낭트의 바닷가에서 만난 뉴망. 뛰어난 필드하키 선수였던 그는 졸업 후 용병 생활까지 하는 등 바닥인생을 살았었다. 이제는 딸이 딸린 부유한 여성과 약혼하기로 되어 있다고. ‘새로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이름도 생의 요람이었던 ‘발베르’로 바꾼 덕분일까. 하지만 그가 끝내 털어놓는 진실은 약혼녀의 청부살인업자 신세라는 것이다.
뉴망 뿐이 아니다. 사기단에 걸려 몸과 일생을 망쳐버린 마르틴느, 마약중독자가 된 샤렐, 폐인이 되어버린 화학 선생님…. 모두가 황폐한 삶을 살아간다.
그의 다른 소설이 그러하듯 ‘시간이 개인의 삶을 멸(滅)한’ 건 시대 탓이기도 하다. 조니의 삶이 대표적이다. 그는 독일과 합병되자 오스트리아를 떠나 할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주해 왔다. 미국행을 택한 할머니와 달리 그는 파리에 남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업도 갖지 못하고 집안의 가구를 팔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시종 우울한 어조로 전개되는 소설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흐른다. 시대의 우울에서 조금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의 숙명. 그걸 그려가는 작가의 태도는 짐짓 객관적이어서 제목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진형준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시대의 우울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
입력 2014-11-07 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