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드디어 우리의 작품을 다룰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안경을 썼다면 콧등 위로 바짝 밀어 올리고 차를 크게 한 모금 마시세요! 이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미스터리한 덩어리에 접근해볼까요?”
똥, ‘미스터리한 덩어리’의 정체는 그것이다. ‘똥에 대해 알아볼까요?’라는 페이지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어지는 문장을 보자. “똥의 대부분이 음식물찌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똥의 4분의 3은 물이다….”
빨려 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저 읽고 나면 마치 보양식 한 그릇을 먹은 것처럼 뿌듯해진다. 꼭 알아야 할 지식을 맛있게 섭취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매력적인 장(腸) 여행’은 장 이야기다. 위, 대장, 괄약근 등을 가리키는 그 장, 변비, 소화불량, 방귀, 위산역류 등과 연관된 그 장 말이다. 뇌나 심장과 비교하면, 장은 주목받지 못한 장기, 심지어 천대받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론 책 한 권이 세상의 화제를 바꿔놓기도 한다. 2014년 4월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은 판매부수 60만부를 돌파했고, 독일에 ‘장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가장 주목받은 책이었고, 23개국에 출간 계약이 됐다고 한다. 어쩌면 장은 세계적 이슈가 될 지도 모르겠다.
책에 따르면 장은 의학계에서 최근 급부상하는 주제다. 특히 장 건강과 감정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장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90년생, 그러니까 20대 초반인 의학도 기울리아 엔더스는 급기야 “이 분야는 최소한 줄기세포 연구만큼 유망하다”고 주장한다.
“10년 전만 해도 논문 몇 편이 전부였는데, 그 사이에 학술보고서가 수백 건으로 늘어났다. 장이 건강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연구 방향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바로 그녀, 엔더스다. 엔더스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 있는 미생물학 및 병원위생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의학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중 이 책을 썼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밀폐된 회의실에 모여 토론하거나 논문에만 기록한다”며 “나는 이런 연구 결과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책 쓴 이유를 설명했다.
책은 "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이 새로운 지식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집필 의도를 100% 만족시켰다. 최신 의학지식을 담은 책이 쉬운데다 귀엽기까지 하다니, 상상이 되는가?
책에 따르면, 장은 우리가 그동안 등한시하고 오해했던 놀라운 신대륙이다. 100조 마리, 총 2㎏ 분량의 미생물들이 우리와 영양소, 에너지, 소화효소 등을 주고받는 곳, 면역세포의 80%를 관할하고 교육시키며 체내 건강감시국 역할을 하는 기관,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의 95%를 비롯해 20여종이 호르몬을 생산하며 뇌 다음으로 신경체계가 발달한 곳, 그 곳이 바로 장이다.
재기 넘치는 문체와 유머러스하고 참신한 비유에 이끌려 킥킥거리며 책을 읽다보면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배변 문제로 고민인 사람이라면 좌변기에 앉은 뒤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이고 양발을 작은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는 조언을 실천해 보자. 짜잔. 장이 직선으로 펴지고, 시원하게 속을 비울 수 있을지 모른다. 위에 가스가 많이 차는 사람은 일단 금주부터 해야 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가스를 생산하는 박테리아가 수천 배로 늘어난다. 말하자면, 어떤 박테리아들에게는 알코올이 먹이인 것이다."
뇌와 장의 상관관계를 다룬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저자는 최근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장이 기분이나 결정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우울증, 불안장애, 과체중, 알레르기 등과도 관련된다고 알려준다.
과학이나 수학, 의학에 대한 지식은 대중화돼야 하고 그러려면 쉽고 재미있는 책이 필수적이지만 그런 책을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책은 꽤나 성공적인 사례다. 필자의 나이가 20대 초반이라는 점이 대중화에 성공한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우울증 근원은 뇌 아닌 腸… 뱃속 편해야 행복해진다
입력 2014-11-07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