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지루함, 철학의 시작

입력 2014-11-07 02:23

유목 생활을 해왔던 인간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인류는 이 여유를 이용해 문명을 만들고 예술을 발전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남는다’는 것이 미덕인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은 멍청하게 취급된다.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을 당한다.

인간은 누구나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삶 속 절대적 풍요로움의 양이 늘어난다 해도 이를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떠오르는 철학자인 저자는 “한가해진 인간은 오히려 그 한가로움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며 “자본주의가 이 한가함에 파고들어 인간의 지루함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철학자 파스칼, 니체, 칸트 등의 논리를 따라가며 인간이 느끼는 지루함의 원리, 이유, 철학, 윤리학 등을 다룬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은 왜 지루해할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된다. 저자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해 “지루하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이라며 “즐기기 위한 훈련을 통해 한가함을 되찾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낭비는 풍요로움의 조건”이라며 “사치스러움을 회복해야한다”고도 꼬집는다. 최재혁 옮김.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