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꿈을 가진 아이들은 적지 않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미국의 현대미술가 호레이스 피핀(1888∼1946)도 그랬다. 그는 흑인 노예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환경 탓에 제대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 했다. 철도역에서 석탄을 퍼 나르고 농장에서 울타리를 고쳤다.
그림이 마냥 좋았던 그는 늘 그림을 그렸다. 타다 남은 숯, 몽당연필, 남은 페인트 등 무엇이든 재료가 눈에 띄면 그림을 그렸다. 친구를 그렸고 일터의 동료를 그렸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어두운 참호 속에서도 그렸다. 전쟁은 그에게 장애를 안겼다. 어깨에 총을 맞아 그전처럼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장애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준 것도 그림이다. 어느 날 난로 앞 부지깽이가 눈에 띄었다. 아픈 팔을 부여잡곤 그 부지깽이로 나무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은 다시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마침내 세상이 그를 알아보는 순간이 왔다. 지역미술인협회 회장이 그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전시회를 열어줬고, 무명의 화가는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너무 늦게 알려져 유명세를 누린 건 생의 마지막 10여년이다.
이 그림책은 위인을 본받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게 미덕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리고 그림을 열렬히 좋아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밝고 따뜻한 색조로 그려나갈 뿐이다. 제목 ‘눈부신 빨강’은 중요한 곳에 빨강 물감으로 살짝 덧칠하는 피핀의 스타일에서 나왔다. 곳곳에 피핀의 작품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숨어 있어 보는 재미를 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어린이 책-눈부신 빨강] 부지깽이로 붙잡은 화가의 꿈
입력 2014-11-07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