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문형표(58) 보건복지부 장관은 송파구 삼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오는 길이었다. 복지관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삼전동에 있다. 이번 겨울에 살펴야 할 복지 사각지대를 점검하기 위해 현장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법이 빨리 통과돼야 어려운 분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겨울을 보내실 텐데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날 들어온 뉴스 중에는 '국밥값' 봉투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독거노인 이야기가 있었다. 서울 장안동에 살던 노인은 전셋집을 비워줘야 하자 목숨을 끊었다. 시신을 수습해줄 이에게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라며 10만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지난 2월 세 모녀의 봉투에 적혀 있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란 글귀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세 모녀 법… 애가 탑니다”
문 장관이 말한 ‘법’은 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 수급권자발굴법 제정안이다. 세 모녀 사건이 터지자 지난 4월 나란히 발의돼 ‘세 모녀 3법’이라 불린다. 국회는 이 법안을 10일에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한다.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을 바꿔 ‘맞춤형 보장’을 시행하려던 건 10월이었다. 예산도 2300억원을 받아 놨다. 하지만 이 돈을 쓰기 위한 세 모녀 3법은 7개월간 국회에서 잠을 잤다. 문 장관은 “애가 탄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정부와 여당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12만명이 새롭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데, 이게 상당히 큰 겁니다. 국회에서 빨리 합의해 통과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복지 현장에선 ‘세 모녀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전엔 솔직히 ‘소극적 복지’였습니다. 신청하면 심사해 지급하는 거죠. 이제는 저희가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복지를 하겠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민간과 정부의 인적자원을 다 활용해서 빈틈이 없게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된 만큼 연내 통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만 정부·여당 안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더 완화해야 한다”는 야당의 지적이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법안은 완화 폭이 훨씬 크다. 여야는 이 간극을 좁혀 타협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또 뭘 하고 있는지 묻자 문 장관은 129 보건복지콜센터 얘기를 꺼냈다.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응급실로 가고 만성질환은 가까운 병원에서 도움을 받지 않습니까. 복지도 마찬가집니다. 만성 빈곤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돕고, 갑작스러운 어려움은 129 콜센터를 통해 긴급복지지원 응급서비스로 도우려 합니다. 현장 공무원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할 겁니다. 급한 분들에게 일단 지원부터 하도록 했습니다. 예산도 2배로 늘려 충분히 확보하려 합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솔직히 말하면…”
문 장관은 연금 전문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시절 공무원연금의 과감한 개혁안을 제시했다. 재정 부담을 완화하려면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규 임용 공무원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파격적인 보고서를 낸 적도 있다.
-현재 공무원연금 논쟁이 뜨겁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복지부는 주무부처가 아님을 몇 차례 강조한 뒤) 그동안 공무원연금 개혁이 제대로 안 된 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공무원연금은 벌써 54년이 된 ‘어른 제도’입니다. 수급자 층이 두텁고, 가입자들의 기대도 큽니다. 연금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급여를 조정해야 하는데 현재는 지속가능성에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지금은 (적자가) 몇 조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10조원, 20조원, 30조원 이렇게 폭발적으로 커질 겁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게 모든 전문가의 진단입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사회적 합의와 개혁 의지에 달려 있고요.”
-공무원연금 수령 시기를 65세 이후로 늦추는 새누리당의 개혁안은 어떻게 보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년보다 훨씬 더 개혁 의지가 강한 안이라고 봅니다.”
국민연금은 2007년 대대적 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소득대체율은 60%였다. A씨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때 월평균소득이 100만원이었다면 월 60만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2043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란 재정 추계가 나오자 이 소득대체율을 서둘러 떨어뜨렸다.
바뀐 제도는 2008년부터 시행됐다. 2008년 소득대체율 50%를 시작으로 이듬해부터 매년 0.5%씩 낮추기로 했다. 2028년 이후로는 40%가 적용된다. 문 장관은 “어린 제도를 고치는 건 비교적 쉽다”고 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19살밖에 안 된 제도였다. 규모가 큰 개혁이었는데도 반발을 뚫고 시행됐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는 2060년으로 17년 연장됐다.
-이렇다 보니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올리는 게 ‘진정한 연금 개혁’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공무원연금 재정 악화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저부담 고급여’ 구조가 오래 누적되면서 생긴 거죠. 연금 액수를 낮춰도 재정 균형을 못 맞추는 상황이 된 겁니다.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재정 문제를 대비해놓지 않으면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처럼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보험료를 언제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아직 없었습니다. 공무원연금을 타산지석 삼아 장기적인 재정계획을 공론화하려 합니다.”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 수준에 맞추는 건 재정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이렇게 에둘러 한 문 장관은 내년쯤 국민연금 재정계획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장(場)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금운용 주체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은 450조원이 넘는 돈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굴리고 있다. 복지부 안팎에선 기금운용공사를 신설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금의 안정성을 위해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박도 만만찮다.
“내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이 500조원을 넘어설 겁니다. 언젠가는 1000조원에도 이르겠죠. 연금공단에서 큰 문제없이 잘 운영해 왔지만 이제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대기금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해 수익성을 높일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왔습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바꿔야 하는데…”
형평성 문제로 개선안을 마련 중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바꿔야 한다는 데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속도를 내는 건 무리라는 말이다.
“직장가입자든 지역가입자든 소득에만 건보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기본 방향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바꾸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자영업자 소득 파악이 완전치 않고, 누군가의 보험료가 낮아지면 누군가는 올라간다는 건데 여기에도 균형이 안 맞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담뱃값 얘기도 안 할 수 없다. 담뱃값 인상이 증세 논란에 휘말린 건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끼워 넣은 게 단초가 됐다. 문 장관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담뱃세의 지역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담뱃세는 지역적으로 매우 불균형하게 들어옵니다. 대도시에서 훨씬 많이 팔리죠. 이걸 전부 지방세로 하면 대도시는 수익이 많이 늘겠지만 재정 능력이 취약한 지역은 악화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오히려 국세로 걷어 교부금으로 나눠주면 지방 재정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조정할 수 있을 겁니다. 형평성 차원에서 국세로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서아프리카 에볼라 의료진 파견에 대해선 “선제적 대응이자 투자”라고 설명했다. 문 장관은 “성공적으로 다녀오면 감염병 노하우가 축적돼 국내에서도 훨씬 성숙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12만명 추가 혜택 ‘세 모녀 법’ 시급… 찾아가는 복지 전환”
입력 2014-11-07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