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는 남한강을 흐른다… ‘한국의 3대 강촌’ 여주의 가을

입력 2014-11-06 03:32
황포돛배 한 척이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열리는 신륵사관광지를 배경으로 호수처럼 고요한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이 축제는 7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다(위). 계절감각을 잊은 철쭉꽃이 활짝 핀 신륵사관광지.
은행나무 길이 아름다운 여주의 강천섬.
남한강은 경기도 여주에서 ‘여강’이라는 아름다운 별칭을 갖는다. ‘검은 말(驪)을 닮은 강(江)’이라는 뜻이다. 여강은 남한강 물길 중 여주를 휘감아도는 40㎞ 구간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여강을 품에 안은 고을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고려 말 문신 목은 이색은 여주를 가리켜 ‘반은 단청 같고 반은 시와 같다’고 극찬했다.

에메랄드빛 여강을 중심으로 산과 들을 보듬은 여주의 산하는 곳곳이 한폭의 산수화나 다름없다. 옛사람들이 대동강의 평양, 소양강의 춘천과 더불어 남한강의 여주를 우리나라 3대 강촌으로 꼽은 이유다.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은 산자수명한 고을에서 여주쌀과 여주도자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여주 여행의 참맛은 강바람을 가르며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것이다. 비상하는 백로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포보에서 측우기 형상을 한 여주보, 그리고 남한강 최상류에 위치한 강천보까지는 24.4㎞.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단청보다 황홀한 색채의 가로수 단풍과 억새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좀 더 자세하게 여주를 살펴보려면 4개 코스 57㎞로 이루어진 ‘여강길’을 걷어야 한다. 여주종합터미널에서 조선시대 여주관아 정문이었던 영월루를 거쳐 도리마을까지 남한강 남쪽 강변을 따라 걷는 제1코스(옛나루터길)는 15.3㎞. 황포돛배선착장을 지나면 김세라나의 가요 ‘갑돌이와 갑순이’를 주제로 만든 조각공원이 위치한 금은모래강변이 나온다. 김세라나의 초기 레코드 원판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여주에 살았다’고 인쇄된 사설에 근거해 만든 소공원으로 갑돌이와 갑순이의 일생을 표현한 앙증맞은 조각 작품이 눈길을 끈다.

여강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제1코스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아홉사리 과거길’이다. 흔암리의 청소년수련원과 여흥 민씨 집성촌인 도리마을을 잇는 아홉사리 과거길은 숲길이 좁고 험해 아홉 구비를 돌아간다는 뜻. 문경새재를 넘은 영남의 유생들이 이 길을 걸어 한양으로 갔다는 길로 강변과 이웃한 나지막한 숲길은 남한강의 물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즈넉하다.

신륵사에서 목아박물관을 거쳐 강천섬까지 연결된 제3코스(바위늪구비길)는 14㎞로 자동차로도 강천섬까지 곧바로 이동해도 된다. 남이섬의 1.5배인 강천섬은 여의도처럼 강물에 실려 온 흙과 모래가 퇴적해 생긴 섬으로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연보랏빛 단양쑥부쟁이를 비롯해 달맞이꽃, 패랭이꽃 등이 군데군데 피어있는 강천섬은 야영지로도 인기. 섬 중앙에 조성된 노란 은행나무길은 연인들이 추억을 쌓는 데이트코스로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강변에는 4대강 공사 중 옮겨 심은 느티나무 수십 그루가 대부분 고사해 기괴한 풍경을 그린다.

세종대왕릉에서 신륵사를 잇는 8㎞ 길이의 제4코스(5일장터길)는 가장 짧은 구간인데다 여주 도심을 통과하므로 가족과 함께 걷기에 좋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세종대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영릉(英陵)으로도 불린다. 드넓은 솔밭에 뿌리를 내린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끄는 세종대왕릉에서 산책로로 연결된 영릉(寧陵)은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효종의 왕릉으로 앞에는 인선왕후의 능이 있다.

남한강이 흐르는 여주의 청정 농산물과 약초, 잡화, 화훼 등 다양한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여주5일장은 수도권 최고의 재래시장. 매주 토요일에는 여주농산물 번개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연인교로 불리는 다리를 건너면 여주 여행의 핵심이자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열리는 신륵사관광지가 기다린다.

황포돛배 선착장과 연결된 신륵사관광지에는 여주도자기를 전시·판매·체험하는 대형 한옥건물인 여주도자세상이 위치해 사철 체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신륵공원은 푸른 잔디밭에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비롯한 온갖 나무들이 황홀한 색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계절감각을 잊은 철쭉이 군데군데 꽃을 활짝 피운 공원은 낙엽이 두툼하게 깔린 산책로와 낙엽이 하나둘 떨어져 쌓이는 빈 벤치가 쓸쓸하다.

여주의 별미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정식이다. 물 좋은 여주에서 생산되는 여주미는 임금에게 진상하던 쌀이다. 흑미와 검은콩, 고구마, 대추, 좁쌀 등을 섞은 여주쌀밥은 햅쌀이 나오는 이맘때가 가장 맛있다. 신륵사관광지의 음식점을 찾으면 여주쌀밥과 함께 나물, 된장찌개, 생선구이 등 20가지 넘는 반찬이 한상 가득 나온다.

여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