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새 도서정가제', 할인율 15%내 제한… 제2의 단통법 논란

입력 2014-11-05 03:14

새롭게 바뀌는 도서정가제가 무너져가는 우리 출판 생태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21일 시행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놓고 출판업계는 2003년 도서정가제법 도입 이후 10여년간 이어져온 ‘책값 할인’ 규모와 범위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한쪽에선 ‘제2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막상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든다는 점, 공급가격을 묶어 시장의 탈법을 잡는 대신 소비자가격을 제한하는 조치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통법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통법은 각 이동통신사 대리점별로 스마트폰 가격을 제멋대로 할인해 판매하는 바람에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자 할인 폭을 일괄적으로 제한한 법이다. 그러나 통신사들이 기기별 보조금을 일제히 낮추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전보다 비싼 값을 치르게 됐다. 지난 2일 새벽엔 일부 대리점이 불법 추가보조금을 기습적으로 지급해 ‘아이폰6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서정가제 개정안도 취지는 단통법과 비슷하다. 그동안 출간 18개월 미만의 신간(新刊)을 제외하면 온·오프라인의 각 서점이 책값을 재량껏 할인해 팔 수 있었지만 개정안은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할인 폭을 최대 15%로 제한했다. 공공도서관이나 교정시설에서 구입하는 책도 예외 없이 정가제가 적용된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이를 어기면 판매자는 판매한 책 1권당 과태료 100만원을 물게 된다. 100명에게 팔았다면 1억원을 내야 한다.

‘제2의 단통법’이란 비판에 출판업계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한국출판인회의 성의현 유통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1%의 작가 외엔 책을 써서 먹고살 수가 없다”며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할인을 무기로 대형 출판사들이 시장을 독식하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정가제는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소비자들은 싸게 살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주장한다. “왜 책값을 법으로 통제하는지 모르겠어요. 소비자는 경쟁을 통해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요?” 서울 서초구 전모(28·여)씨는 4일 스마트폰으로 구매한 책 내역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전씨는 “매주 평균 1∼2권씩 산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통제 정책은 정말 불만스럽다”고 했다.

책을 사재기하기도 한다. 격주로 독서토론 모임을 갖는 직장인 김모(33)씨는 앞으로 읽을 책 10여권을 지난주에 미리 주문했다. 그는 “앞으론 중고 책을 구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정 수준의 판매가를 유지해 출판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취지지만 개정 도서정가제도가 근본적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점마다 책을 공급받는 가격(공급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출판사 정가 1만원인 책이 동네서점에는 대략 7500원, 온라인 서점에는 5000원 정도에 입고되고 있다. 이런 차이를 놔두고 할인 폭만 제한하면 인터넷 서점만 수혜를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단통법 시행 후 이동통신사만 이득을 보는 것과 사실상 마찬가지인 구조다.

서울 양천구에서 25년간 동네서점 ‘햇빛문고’를 운영해온 정덕진(53)씨는 “이미 과도한 할인경쟁으로 지난 7년간 양천구 서점이 60개에서 16개로 줄었다”며 “중소 서점을 살리려면 독일처럼 ‘공급률 정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그동안 파악한 지역 손님 취향에 맞춰가며 서점을 유지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동네서점이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