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지 7주가 흘렀지만 가자지구 주민들은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외로운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폐허가 된 동네보다 더 심각하게 파괴된 건 전쟁과 트라우마로 황폐해진 이들의 내면이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제임스 S 고든은 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20년간 코소보 아이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과 재난 현장에서 주민들의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지만 이곳만큼 ‘심리적 폐허’가 된 곳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심신의학센터’의 대표인 그는 가자지구에서 심리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든 박사는 살아남은 모든 사람이 파괴된 일상과 가족, 공동체 위에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숨거나 피할 필요가 없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악수조차 편하게 못하고 긴장에 휩싸여 있다”면서 갑작스러운 분노, 죽음과 시체에 대한 환영, 돌연한 긴 침묵이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했다. 특히 악몽 같은 현장에서 수개월 동안 분투했던 팔레스타인 적십자 대원들은 아주 간단한 일이나 방금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악몽으로 허우적대고 비명을 지르며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가자지구 내 쿠후자 마을에서 재건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전직 세관공무원 모슬람 엘 나야르는 “파괴된 마을보다 정신적 황폐를 복구하는 일이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또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든 박사는 수십명의 일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된 사람들이 비일비재한 가자지구 사람들에 대해 “그들 내부에서 무언가 (영원히) 파괴됐다”고 묘사했다.
가자지구는 지난 7월 이스라엘 10대 소년들에 대한 납치와 보복살인으로 촉발된 대규모 공습과 교전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2만여 가옥이 파괴됐다. 3만9000명이 여전히 유엔 임시보호소에 살고 있으며 10만명 이상이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가자지구 주민들 ‘심리적 폐허’ 심각
입력 2014-11-05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