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 땅굴’ ‘12월 한반도 전쟁’ 說 불안심리 자극… 간증 본래 취지 벗어나

입력 2014-11-05 03:02
지난달 중순 한 모 예비역 공군 소장이 경기 성남의 한 교회에서 공개한 ‘청와대 땅굴망’ 모형도. 유튜브 동영상 캡처
'2014년 12월 전쟁'을 주장하고 있는 홍 모 전도사의 예언 간증 집회 동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동영상 캡처
"청와대 밑에 남침용 땅굴이 있다." "2014년 12월에 제 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것이다." 이처럼 전쟁이 임박했다고 예언하거나 안보위협을 부각하는 간증집회가 논란을 빚고 있다.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고백하는 게 간증의 본래 취지이지만 국가 안보를 내세워 불안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청와대에 48개 (땅굴망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난달 중순 경기도 성남의 A교회에서 열린 한모(60) 공군 예비역 소장의 강연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일대에 최근 발생한 싱크홀(땅꺼짐 현상)을 두고 “북한의 남침 땅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국 남침 땅굴망’ 모형도까지 제시하며 “군에서 땅굴의 실체를 은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문이 커지자 국방부는 지난달 말 공식입장을 내고 “북한의 남침 땅굴 설치와 관련해 어떤 징후도 식별된 게 없다”면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남침 땅굴’ 강연 동영상은 4일 현재 동영상전문 사이트 유튜브에서 조회수 32만 건을 넘어섰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출신이라는 홍모 전도사도 여러 교회의 간증집회에서 “2014년 12월에 한국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주님이 (나에게) 메시지를 주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다. …12월에 남북에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간증에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2개월 반 동안 한국전쟁 (발발)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현재 유튜브에 9회까지 올라온 그의 ‘한국전쟁 메시지 - 2014년 12월 전쟁!’ 시리즈는 각 회마다 조회수가 적게는 3만에서 많게는 8만여 건까지 이르는 등 모두 50만 건을 넘어섰다.

그의 예언 간증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풀러신학교는 홍 전도사의 예언 사역에 관한 공식 입장을 냈다. 신학교 측은 “홍씨가 풀러에서 공부한 것은 사실이나 학위 과정을 마치지는 못했다”면서 “홍씨의 가르침과 간증은 개인적 관점을 반영할 뿐 풀러신학교의 신학적 입장이나 가르침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교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예언 간증 사역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차분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이원규 감신대 종교사회학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부터 에볼라 공포에 이르기까지 최근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정세가 반영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진단하면서 “교회 사역자들이 성도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지 않고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다면 기독교는 물론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회가 불안할 때면 으레 종말과 전쟁에 대한 예언이 이어져왔다”면서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지켜봐왔다면 주목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국가의 위험요소를 이용해 개인적 견해와 신념을 내세우는 것은 순수하지 않다”면서 “목회자나 성도들은 간증자의 일방적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후원정책실장인 정성길 장로도 “잘못된 정보와 지식으로 발표한 내용이 군선교는 물론 기독교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반면 국가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 한다는 점에서 이해해줘야 한다는 시각도 일부 있다. 해병 2사단장을 지낸 예비역 소장 박환인(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장로는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간증자들의 순수하고 절박한 마음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며 “특히 국가 안보와 관련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만섭 한국교회언론회 사무국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신앙고백은 개인의 감정과 인격,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특히 예언은 성경의 교훈에 합치되지 않을 때 매우 위험할 수 있다”면서 “간증을 일반화하거나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 무분별하게 전파하는 건 조심하고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