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반기문 현상’이 뜨고 있다. 다음 대선까지는 3년 넘게 남았는데 때 아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야 모두에서 반 총장과 관련한 ‘대권 시나리오’까지 나도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야에 모두 압도적인 대권 주자가 없어서 이런 현상이 나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출신의 반 총장이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아 여야가 모두 “자기 쪽 사람”이라는 점을 은근히 띄우고 있다는 논리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어서 대안 찾기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권에서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꺼려하는 친박(친박근혜) 주류가 김 대표를 견제하려고 꺼내든 카드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야권에선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반 총장을 영입해 경선을 시켜야 한다면서 ‘반기문 현상’을 공론화했지만 동교동계의 목소리 키우기라는 해석도 있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이 4일 ‘광주·전남 국회의원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반 총장을 (영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반기문 대망론’은 충북 출신인 반 총장의 중원 장악력 때문에 더욱 힘을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가 손을 잡고 ‘DJP 연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충청권 표심을 등에 업고 집권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비정치인 출신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춘 점도 주목된다.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며 불신을 초래했던 현 정치권에 대한 혐오증을 극복할 수 있는 참신한 카드라는 이유에서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인지도가 높은 데다 공무원 출신으로서 안정적인 이미지까지 겹쳐질 수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20대와 60대에서 모두 지지율이 높은 만큼 그 중간에 끼인 세대 역시 함께 좋아하는 동조화 현상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구도를 개편하는 등의 개헌 논의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리면서 반 총장의 외교전문가 면모가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다만 반 총장이 권력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변수다.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하는 순간 쓴맛을 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떠오른 고건 전 국무총리나 18대 대선에서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 사례처럼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희웅 민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반 총장이 특정 정당 소속으로 자리매김하거나 그런 시도를 할 때 지지율이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판에서 유력한 ‘미래 후보’를 가만 놔둘 리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반 총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임기가 2016년 말까지인데 벌써부터 국내 정치판에서 오르내리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음 대선 얘기를 꺼내는 게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라면서 “여야가 정치를 잘 해서 집권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할 인사를 대권 후보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이슈분석] 정치권, 반기문에 왜 주목하는가
입력 2014-11-0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