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의 ‘달항아리’ 신학대학원에 간 까닭은…

입력 2014-11-05 03:29
광주왕실도자기 명장 박부원 장로(오른쪽 두 번째)와 한신대 신학대학원 연규홍 원장(맨 오른쪽)이 4일 서울 강북구 한신대 신대원에서 열린 '달항아리' 기증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4일 오후 1시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 한신대 신학대학원 장공기념관 1층 로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이 곳에서 ‘달항아리’ 기증식이 열렸다. 이날부터 전시되는 항아리는 ‘백자 달항아리’와 ‘분청 달항아리’. 두 항아리 모두 어른이 두 손으로 안으면 품 안을 가득 채울 크기였다.

달항아리를 기증한 주인공은 박부원(옥토교회) 장로다. 2008년 경기도 광주시로부터 광주왕실도자기 초대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달항아리 제작의 국내 최고 명인으로 꼽힌다. 높이와 너비가 40㎝가 넘는 둥근 항아리를 달항아리라고 하는데 한번에 성형하기(굽기) 어려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몇 없다.

박 장로의 달항아리는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민속박물관,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 등에도 전시돼 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박 장로의 항아리는 5000만∼1억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이 유명한 달항아리가 어떻게 신학교인 한신대 신대원으로 오게 됐을까.

시작은 한신대 신대원 출신의 목사가 건넨 적금통장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목사는 지난 9월 초 연규홍 한신대 신대원장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1000만원짜리 적금이 곧 만기가 되는데 신대원이 좋은 일에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 원장은 1000만원을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에 쓰기로 했다. 그 때 20년 전 옥토교회의 전신인 광주제일교회에 설교하러 갔다가 인연을 맺은 박 장로가 떠올랐다.

연 원장은 “한신대는 한국적 신학을 표방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적 상징물이 하나도 없었다”며 “예비 목회자들이 역사적 인식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에 박 장로를 찾았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연 원장의 갑작스런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달항아리의 가치에 비해 1000만원은 소액일 수 있지만 그는 오히려 “달항아리는 한 점만 있으면 외로워서 안 된다”며 백자 달항아리와 짝을 이룰 분청 달항아리까지 내놓았다. 박 장로는 이날 기증식에서 “학생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신 예술적 영성을 달항아리에서 느꼈으면 좋겠다”며 “항아리는 비우는 것과 채우는 것이 중요한데 신학생들이 세속적인 바람을 비우고 하나님의 영성을 가득 채웠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