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오 대위 ‘그에 의한 스트레스는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

입력 2014-11-05 02:03

‘와장창’.

육군 15사단에서 근무했던 오모(28) 대위는 지난해 10월 14일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직속상관인 노모(37) 소령이 “양잿물에 코 박고 죽어”라는 폭언을 퍼부은 날이다. 오 대위는 노 소령에게 지속적인 성추행까지 당했다. 다음날 일기에는 “그에 의한 스트레스는 진짜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사실 이게 요즘 내 스트레스의 9할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하루 뒤 결국 목숨을 끊었다.

군인권센터는 4일 오 대위의 ‘심리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군인권센터와 전문가들이 오 대위의 유서와 생전의 일기 내용 등을 토대로 자살에 이르게 된 심리적 원인을 찾는 작업이었다.

오 대위는 15사단으로 전입하기 전까진 자살 요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전입 후부터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노 소령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적응장애’가 생기고, 이내 ‘주요우울장애’라는 정신질환 상태로 진전됐다고 판단했다. 심리부검을 진행한 경기도 화성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전준희 센터장은 “적응장애는 스트레스 사건이나 상황이 없으면 발생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적응장애, 주요우울장애가 복통 구토 등을 동반한 고통으로 심해졌고 결국 오 대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설명했다.

일기장은 마음의 기록이었다. ‘극으로 치닫는 모욕’ ‘저 사람은 내가 진짜 사라지길 바라고 있구나’ ‘내 잘못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나는 대역죄인이 되어버리고’ 등 오 대위가 상관에게 받은 스트레스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다만 노 소령이 어떤 가혹행위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충남정신건강증진센터 박진아 팀장은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 자기 내부로 향하는 반동형성이 작용하면서 표현을 자제한 듯하다”며 “차라리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향해 공격성을 표출했다면 자살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군인권센터는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공소장에 기재된 가해자 노 소령의 강제추행 혐의를 ‘강제추행치상’이나 ‘상해’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가족 측 강석민 변호사는 “1심 재판부는 노 소령의 가혹행위와 강제추행 등을 오 대위 자살과 연관이 없는 것으로 봤다”며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오 대위 아버지는 “우리 딸은 대한민국의 의로운 여군이었다. 딸의 명예를 꼭 회복시켜 달라”며 오열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