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연탄

입력 2014-11-05 02:30

높이 14.2㎝, 지름 15㎝, 생산무게 3.6㎏, 건조무게 3.3㎏, 구멍 22개, 발열량 4600㎉, 착화온도 섭씨 450도. 요즘 연탄의 명세서다.

국내에 연탄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20년대, 일본인이 평양광업소를 세우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구멍이 없는 조개탄 주먹탄 형태였으나 점차 구멍 수에 따라 9, 19, 22, 25, 32공탄까지 나왔다. 한국전쟁 이후 사용이 크게 늘어났으며 한동안 19공탄 중심이었으나 65년 삼천리연탄기업사가 22공탄을 생산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다. 연탄구멍이 많을수록 연소가 잘되나 너무 빨리 타는 단점도 있다. 연탄을 많이 쓰는 북한은 연탄가스 중독을 일으키는 일산화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한다는 19공탄을 사용한다.

연탄은 생활물가의 얼굴이다. 수급불균형은 두 차례의 연탄파동을 낳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66년 물가안정을 위해 강력한 가격통제 정책을 폈다. 장당 15원이던 연탄 값을 8원으로 묶었다. 그러자 생산이 중단됐고 공급량 부족으로 값은 3∼4배 올랐다. 귀해진 연탄은 ‘검은 보석’으로도 불렸다. 오일쇼크로 원유 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74년 초 연탄 사용을 독려했다. 한 차례 연탄파동을 겪은 국민들은 봄부터 사재기에 나섰고 여름이 되자 그해 연탄 공급량이 동이 났다. 연탄카드, 연탄배급제가 도입됐고 성난 주부들은 연탄집게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시위 사진이 신문 사회면에 크게 실렸다.

80년대 중반 이후 연탄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 347곳이던 연탄공장은 47곳으로 줄었다. 그러나 최근 3∼4년 전부터 오히려 소비는 늘고 있다. 이번 겨울엔 작년보다 6.7% 정도 증가한 16만8000여 가구가 연탄을 땐다. 겨울나기가 힘들어진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지금 연탄 한 장은 550원 정도이나 내년부터 오를 것 같다.

국민일보는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과 함께 ‘사랑의 연탄’ 전하기 캠페인을 내년 1월까지 전개한다. 안도현은 시 ‘연탄 한 장’에서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올 겨울 연탄 한 장이 돼 보는 건 어떤가.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