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달과 별 미술관

입력 2014-11-05 02:18

1층 북카페는 백반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래된 책이 꽂혀 있던 나무책장과 파도의 질감이 그대로 묻어난 그림들, 옛집을 떠올리게 하는 난로가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백반집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수지가 맞지 않아 주인이 북카페를 세주고 게스트하우스만 운영한다는 것이다. 백반집 아줌마는 내 카메라를 보더니 주인아저씨도 사진을 찍던데 한번 만나보라고 넌지시 권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주인아저씨에게 나는 7년 전 이곳에 카페 벽마다 멋진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 그림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바닷가에 손수 만든 작은 갤러리에 가져다뒀는데 보여주겠다고 했다. 번거롭게 하는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지만 그는 오랫동안 기억해주는 사람이라면 형도 보여주기를 바랄 것이라 했다.

겨울이라 가는 길에 해가 졌다. 아무것도 없는 외진 곳에 작은 미술관이 하나 있었다. 한쪽 면은 통유리였다. 잠시 후 하늘과 바다가 구분가지 않을 만큼의 어둠이 내려앉고 그 사이로 손톱달이 나타났다. “여기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게 이런 풍경을 혼자만 볼 때예요.” 그러면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땅끝마을이라 그런지 사연 있는 사람들이 많이 왔죠. 형도 그중 하나인데, 매년 와서 그림을 그렸어요. 언제부턴가는 제가 물감을 사놓았죠. 딱 봐도 형편을 아는데, 그 양반이 물감 사고 그럴 여유가 없어요. 그냥 예술가였죠. 돈 벌려고도 하지 않고 여기 오면 몇날 며칠 그림을 그렸어요.”

그는 그림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진짜 미술관에 전시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마지막 몇 년 동안 그가 형이라 불렀던 그 화가는 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겨울이면 북카페의 난로 주변에 손님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불을 쬐며 군고구마를 까먹곤 했다고, 그들 중 화가 형도 함께 있었다고,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림을 소중히 여겨주는, 그 마음을 알아주실 거예요’라고 생각할 뿐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하늘을 바라봤다. 손톱달이 조금씩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조명이 생략된 그곳은, 온통 달과 별뿐이었다.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