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대북전단 살포 후 관계 급랭… 해법은] 北 ‘노림수’ 맞서 南 ‘통큰수’ 고민

입력 2014-11-04 03:41

대북전단(삐라) 살포 문제로 시작된 남북 갈등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상호 비방전으로 격화되는 양상이다. 북한이 “최고 존엄(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훼손”을 운운하자 우리 정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양측이 정면충돌하면서 남북관계가 상당기간 급랭될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된다.

박근혜정부 들어 대북관계 개선 기회가 경색국면으로 바뀐 것은 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 6월 양측 당국회담이 수석대표 급(級) 문제로 결렬되더니 올 초엔 제1차 고위급 접촉으로 모처럼 해빙무드가 조성될 듯하다 금세 흐지부지됐다. 그러다 지난달 남북 합의로 열릴 예정이던 2차 고위급 접촉이 또 무산됐다. 이처럼 정부의 ‘실기(失期)’가 반복되자 기존의 ‘원칙 고수형’ 대북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통 큰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정부는 2차 고위급 접촉 무산을 북한보다 먼저 공표했다. ‘10월 말∼11월 초 개최’라는 양측 합의사항에 따라 이달 상순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대화 가능성을 먼저 접었다. 관계 개선이 다급하다고 대북 원칙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작년 수석대표 급 문제도 마찬가지이고 전단 살포 역시 북한의 비상식적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비난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날에 이어 3일에도 박 대통령을 ‘괴뢰 집권자’라고 지칭했다. 지난 4∼5월에는 ‘역도’ ‘제거해야 할 특등 재앙’ ‘살인마’ 등의 막말성 인신공격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장밋빛 희망’이 우세했지만 연내 접촉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지자 이제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실망과 피로감이 커지는 양상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차제에 정부가 원칙 고수에서 벗어나 ‘통 큰 접근’을 고려해볼 시점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관성 있는 대북 원칙이 남북관계를 바로잡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관계 타개 기회를 번번이 놓쳐버리는 걸림돌로도 작용한다”면서 “전략을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예민한 반응은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를 보여주는 것인 만큼 우리 정부가 속 좁게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전단 문제에서 드러난 남북 입장차는 북한의 최고 존엄 가치와 정부의 헌법수호 가치가 충돌한 것이라 어느 한쪽이 입장을 바꾸기 힘들다”며 “남북 모두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는 통 큰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은 필요에 의해 언제든 태도를 바꾸는 만큼 정부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원칙 고수를 옹호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