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역이든 맛깔나게 소화하며 스크린 종횡무진하는 ‘충무로 대세’

입력 2014-11-05 02:04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카트’ ‘현기증’에서 빛나는 조연을 맡아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배우 김영애. 그는 “나이를 먹으니 연기 욕심이 난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명필름 제공
영화계에 ‘빛나는 조연’의 남자배우로 이경영을 꼽는다면 여배우는 김영애(63)가 있다. 올 들어 ‘우리는 형제입니다’ ‘카트’ ‘현기증’ 등에서 색깔 있는 역할로 출연하고, 현재 촬영 중인 ‘허삼관’에서도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다. 지난해 ‘변호사’에서 부산사투리를 쓰는 마음씨 좋은 국밥집 주인으로 나와 인상을 남겼다. 1971년 MBC TV 3기로 연기인생을 시작한 그는 숱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러다 2004년 사업가로 변신하며 배우생활을 접었으나 사업에 실패하고 2006년 KBS ‘황진이’로 컴백했다. 이후 2012년 MBC 사극 ‘해를 품은 달’에서 대왕대비를 맡아 인기를 모았다. 어떤 배역이든 소화하는 탄탄한 연기력과 발음이 분명한 목소리가 장점이다. 요즘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며 ‘충무로의 대세’로 각광받고 있는 중진배우 김영애의 영화 속 매력 포인트를 알아본다.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 애틋한 어머니=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이별한 후 30년 만에 극적 상봉한 형제(조진웅·김성균)의 어머니를 연기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해후한 자식들을 두고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형제가 헤어지게 된 것은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 젊은 시절의 과오를 평생 동안 가슴에 품고 사는 어머니다.

‘국민 엄마’ 김영애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해맑은 얼굴로 전국을 돌며 사고를 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두 아들의 애를 태우게 하는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친근한 이미지와 따스한 웃음으로 훈훈한 감동을 불어넣는다. 두 아들과 상봉하는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카트’에서 불의에 맞서는 청소원 아줌마=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청소원 순례 역을 맡았다. 순례는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 싱글맘 혜미(문정희),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88만원 세대 미진(천우희), 업무의 일환으로 이들을 해고시켜야 하는 입장이 되는 동준(김강우)을 하나로 묶는 배역이다. 노련한 그녀이기에 가능한 역할이다.

그는 회사의 부당 해고에 맞서 파업을 이끄는 열혈 아줌마로 목소리를 높인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동료들에게 용기를 북돋는다. 그런 중에서도 자식 같고 조카 같은 노조원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휴머니티를 발휘한다. 그는 “영화를 통해 비정규직의 현실과 사회구조를 알게 됐다.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기증’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큰딸 영희(도지원)와 사위 상호(송일국)가 낳은 아기를 치명적인 실수로 죽게 만드는 순임 역을 맡았다. 극도의 죄책감과 공포감에 순임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고 가족들은 그런 엄마에 분노한다. 순임은 점점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고 가족 모두는 각자 직면한 고통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수가 없다. 그들이 맞이할 파국의 결말은 무엇일까?

김영애는 평범했던 가족이 파괴돼 가는 와중에 점점 미쳐가는 역할을 리얼하게 해냈다. 넋을 놓고 분노하고 울부짖는 연기가 압권이다. 3일 시사회 후 그는 “촬영이 끝나고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어 한 달 넘게 고생했다”고 밝혔다. 이돈구 감독도 “매일 촬영장에 울면서 올 정도로 감정적으로 힘들어 하셨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김영애표 연기가 가을 극장가를 풍성하게 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