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힘들다. 언제나 돈이 없다. 마이너스 인생이다. 마이너스는 늘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혹시라도 우리가 살아서 발견된다면 응급처치는 하지 말고 그냥 떠날 수 있게 해 달라. 뒷일은 남편이 해줬으면 한다.”
또 한 가족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졌다. 중학교 1학년인 철부지 딸아이도 부모의 가난에 함께 희생됐다.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60대 노인이 자신의 장례비와 밀린 전기·수도요금 등 176만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하루 만이다.
3일 인천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11시50분쯤 인천시 남구의 한 빌라에서 A씨(51)와 부인 B씨(45), 딸 C양(12)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져 있는 것을 C양의 담임교사가 발견했다. 현장에선 B씨가 연필로 쓴 유서 4장과 C양의 유서 1장이 발견됐다.
B씨는 유서에서 마이너스 대출 문제 외에도 “보험대출도 꽉 찼다. 추한 꼴 보기 전에 먼저 간다. (남편이) 백수로 살아 힘들었다. (중략) 마감시한이 11일로 다가온다”고 적었다.
C양의 유서에는 “아빠, 그동안 막 부려서 미안해. 담임선생님이 물어보면 사고사라고 하면 돼. 밥 잘 챙기고 건강 유의해. 아빠 열심히 살아야 해”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숨진 부인과 딸을 뒤늦게 발견한 A씨가 뒤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조직검사와 유서 필적감정을 의뢰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경매에 관심을 갖다 수차례 실패했고, 1년 전부터 서울 오류동의 한 폐기물업체에서 근무했으나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다. B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다 지난 9월 초 그만둬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살고 있는 50㎡ 규모의 빌라는 부인 B씨 명의로 돼 있지만 대출을 위해 은행에 담보로 잡혔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A씨 가족은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니었고, 주택 소유자인 탓인지 긴급복지지원 신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생활고로 보험약관 대출도 받아쓰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소진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처럼 연일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잇따르지만 지난 2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논의돼온 ‘세모녀 법’은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세모녀 사건 당시 이미 국회에는 맞춤형 지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부양의무자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된 12만명이 구제받을 수 있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세모녀 3법’ 내놨다. 긴급지원 범위를 넓히는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부양의무자 기준을 크게 완화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사회보장수급권자 발굴·지원법 제정안 등으로 정부와 새누리당 안보다 더 나아간 법안이었다. 그러나 모두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정부가 10월부터 새로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겠다며 미리 받아놓은 올해 예산 2300억원도 쓸 수 없게 됐다. 지금도 법안에 대한 여야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지원 범위를 놓고 지루한 논쟁만 하고 있다.
인천=정창교 기자, 문수정기자 jcgyo@kmib.co.kr
“돈 없다… 힘들다” 일가족 3명 극단 선택
입력 2014-11-04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