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소강 상태였던 글로벌 환율전쟁이 지난 주말 일본 중앙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발표로 다시 불붙었다. 내수 부진과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는 일본과 유럽 등이 경쟁적으로 돈을 풀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춤으로써 수출 증대를 꾀하는 전쟁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수출기업에 부담을 주는 엔저(엔화 약세)가 또다시 불거져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를 짓누르고 있다. 엔저 공포에 대응할 수단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댕긴 환율전쟁에 우리가 끌려들어가는 형국이다.
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1원 오른 1072.6원으로 마감했다. 오전 한때 11.3원 급등했다가 상승폭이 다소 줄었다. 일본의 양적완화 여파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고 미국 달러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여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
엔·달러 환율은 112엔을 넘어섰다. 달러 강세로 원화도 약세를 띠고 있지만 엔화 약세가 더 가팔라 원·엔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 원화와 엔화는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 달러화 대비 가치로 비교(재정환율)한다. 원·엔 재정환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인 100엔당 940∼950원대로 떨어져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내년 상반기 중에 엔·달러 환율은 117엔까지 오르고 원·엔 환율은 100엔당 920원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엔저가 심해져 원·엔 환율이 떨어지면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국내 수출주에 대한 투자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로 인해 시장에선 한은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생기고 있다. 엔저가 국내 경기부양 기조를 강화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IBK투자증권 윤영교 연구원은 “최근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 추진력이 의심을 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선 엔화 약세 가능성 확대가 재정적자를 감내할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DB대우증권 윤여삼 채권팀장은 “엔저 공포에 대응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는 현재 여건에서 한은의 통화정책 완화에 대한 압박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대투증권 신동준 연구원은 기준금리가 내년 1분기까지 1.7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연내 인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엔저가 우리에게 무조건 악재인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와 그로 인한 코스피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일본의 양적완화 조치가 시간이 갈수록 유동성 확대 및 위험자산 선호로 인식돼 중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윤영교 연구원도 “엔화의 방향이 국내 수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결정적이지 않다”며 “조금 생각을 비틀어보면 중장기적으로 중립적이거나 호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돈 풀기로 미국·중국·유럽 등 우리나라 수출대상국의 소비가 살아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이날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열고 “일본의 양적완화와 관련한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현상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시장 참가자의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일본의 양적완화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현재 최대 관심사”라며 “금융시장 여파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일본發 환율전쟁 2라운드] 한국 경제 ‘엔저 공습’… 한은 금리인하로 기울까
입력 2014-11-04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