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간염치료 “단독요법 가능”… 가이드라인 변경

입력 2014-11-04 02:01
지난달 27일 이관식 교수(연세의대)가 대한간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항바이러스제 내성 B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를 골자로 하는 B형간염 진료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 초 일선 의료현장에서 B형간염 치료제로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한 종합병원이 B형간염을 치료 중인 환자 수십명의 처방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부터 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삭감’ 결정을 받은 것이다. 이 같은 삭감은 한 곳이 아닌 다수의 병원에서 발생했는데 의료기관과 심평원, 환자 간 마찰이 심각했던 사건이다.

삭감 대상이 된 처방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있어 치료제를 2개 이상 복용하던 환자들을 1개의 치료제만 복용하는 단독요법으로 교체하면서 발생했는데 문제는 해당 처방을 받은 환자들이 1개의 치료제로도 바이러스 수치가 충분히 관리되고 치료경과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환자들이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삭감의 사례가 각 병원마다 다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삭감’의 기준에 대해 의료현장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등 불신이 심화되기도 했다.

심평원에서는 해당 치료제의 처방이 ‘근거 부족’이라는 입장이었는데 처방 기준에 내성환자는 서로 다른 두 계열의 치료제를 ‘병합’해 치료받도록 하고 있어 단독요법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의료현장에서는 단독요법으로 바이러스 수치가 충분히 관리되고 있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같이 일선 진료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자 대한간학회는 지난달 27일 만성 B형간염 진료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삭감 논란이 있은 지 1년 여만이고 2011년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 3년 만의 개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중심은 논란이 됐던 내성환자 치료와 관련한 진료지침의 변화다. 기존 가이드라인은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 서로 다른 두 가지 계열의 치료제를 병합해 치료할 것을 권고해 왔으나 이제는 바이러스 억제력이 충분하다면 단독요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종류의 치료제만 먹어도 바이러스 수치 관리가 가능하다면 환자의 복용 편의성도 높아지고, 약제수가는 줄어들기 때문에 환자들에게는 치료비 절감 효과도 있다. 또 정부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재정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관련, 대한간학회 안상훈 홍보이사(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는 “진료 가이드라인은 실제 현장의 진료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치료의 기준을 담는 것”이라며 “간학회는 그동안 간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고, 축적된 연구 결과가 입증하고 임상 현장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치료 옵션의 변화가 있다면 가이드라인에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번 개정의 의의를 밝혔다.

지난달 27일 대한간학회의 B형 간염 진료가이드라인 개정안 발표를 맡은 이관식 교수(연세의대)는 “3년 전 진료가이드라인이 테노포비어 출시 전에 만들어져 현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최근 심평원 삭감 문제 등으로 의료진과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학회의 진료 가이드라인은 해당 질환의 전문가들이 최신의 치료 상황을 반영해 만들어 내는 표준 치료요법으로 일종의 ‘진료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방대한 연구결과들을 검토하고 실제 임상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기 때문에 개정작업에 수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질환 치료에 나서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근거에 따라 신중하게 개정하기 때문에 임상현장뿐 아니라 정부기관의 신뢰도 높다.

다만 이 같은 개정 가이드라인을 바로 임상현장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변화된 진료 가이드라인이 아직 보건복지부의 급여기준에 반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전의 삭감 결정 이유가 ‘근거불충분’이었다면 현재는 학회 차원에서 국내의 임상현장에서 이뤄진 연구결과들을 모아 진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상황인 만큼 ‘근거불충분’ 이유만으로 삭감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에 대해 “이전 전문가 자문위원회에서 관련 약제에 대해 향후 근거가 마련되면 재논의하겠다고 보고된 바 있다. 때문에 학회에서 개정·발표한 관련 가이드라인을 위원회를 다시 소집해 반영여부를 논의한 뒤 급여기준안을 복지부로 올리면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