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돼 있지만 아직까지 에볼라 바이러스에 치료 효능을 보이는 항바이러스제는 개발돼 있지 않다. 최근 동물실험을 마치고 임상시험에 돌입한 ‘미국산’ 항바이러스제가 있지만 동물에서 확인되지 않은 부작용이 사람에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약이 나왔다’고 낙관하긴 이르다.
항바이러스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가 되는 바이러스를 배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험자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항체(면역세포)가 필요하다. 항체는 실험자에게 감염의 방패막이 되어 준다. ‘항바이러스제’를 연구 중인 대학교수 A씨는 최근 공항에서 기막힌 일을 겪었다. 미국의 한 바이오회사로부터 수입한 항체를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A교수가 곧바로 공항 측에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묻자, ‘검역에 걸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검역이란 감염병이나 해충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국자와 화물을 검사하고 소독하는 일을 말한다. A교수는 어떤 질병에 대해 면역력을 갖게 하는 항체가 감염병과 동급이 되어 검역에 걸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사람에게서 유래된 항체는 괜찮지만 쥐나 동물에서 만들어진 항체는 축산에 잠재적 영향을 미쳐 안 된다는 것이다. A교수는 황당했다. A교수는 “항체는 동물에서 유래한 것이나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이나 똑같다. 더욱이 국내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시급을 다투는 연구임에도 정부는 이를 지원해주거나 보호해줄 의무를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풍토에선 어떤 항바이러스제의 개발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A교수는 미국 회사 측으로부터 해당 항체는 ‘안전하다’는 내용의 문서를 받아 검역담당부서에 전달함으로써 항체를 받을 수 있었다. 의외로 싱거운 결말이다. 하지만 온도와 습도 등 환경에 민감한 항체를 빠른 시간 내 화물창고에서 꺼내오기까지 검역 담당자와 입씨름을 벌여야 했던 A교수는 대한민국 연구자로서의 허무함을 느꼈다고 한다. A교수는 “에볼라 사태에 대해 정부와 우리 국민들은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것 같다. 국민들은 수천 명이 감염되어 죽는 것을 보면서 ‘과연 어떻게 하면 안전해질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에볼라가 창궐하든 미국에서 감염자가 발생하든 자기 부서 일만 하면 아무 문제없다는 식이다”고 비난했다.
당시 검역 담장자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 축산, 식량의 품질과 안정적 공급을 책임지는 부서다. 사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에볼라 사태’와 관련이 적은 부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관련 있는 부서는 질병관리본부다. 그러나 ‘서류 한 장’으로 일단락된 이번 일은 ‘부처’와 ‘부처’ 간에 정보 교류가 있지 않고 칸막이 너머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공무원 생리가 그대로 드러나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정부가 치료제 개발은 뒷전에 두고 의료진을 파견하겠다며 열을 올리는 사이, 국내 과학자들은 당장 필요한 치료제 개발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에볼라 잡으려면 연구에 필요한 ‘항체’ 들여와야 하는데…
입력 2014-11-04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