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전부지 高價입찰 부담” 지적… 현대차 이사회 거수기 아니었다

입력 2014-11-04 02:59
현대자동차 일부 사외이사는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 하루 전인 지난 9월 17일 열린 현대차 이사회에서 “(입찰가가) 지나치게 높으면 부담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부지 매입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으며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현대차 사외이사 A씨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사회에서 1시간 이상 토론이 이뤄졌고 지나치게 높으면 부담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경영은 어차피 모험을 수반하는 것이고 무리하더라도 반드시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경영진의 설명에 결국 (이사들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차 이사회에는 사외이사 5명을 포함한 9명의 이사 중 7명이 참석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차 경영진은 이사회에서 구체적인 입찰금액은 밝히지 않았으며, 입찰 상·하한선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만 제시했다. 이사회는 경영진의 설명을 들은 뒤 만장일치로 입찰에 찬성했고, 입찰금액 결정은 정몽구 회장에게 위임했다.

현대차의 다른 사외이사 B씨는 “한전부지 매입은 수요의 절박성, 현금동원 능력, 입찰의 특성이 결합돼 있다”며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삼성그룹이 상대인데 입찰금액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만장일치 이유를 설명했다.

현대차 경영진은 이사회에서 2007년 삼성물산 컨소시엄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낙찰을 근거로 사외이사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삼성도 용산 입찰 당시 예상가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 낙찰 받은 만큼 우리도 이번에 감정가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국민연금 컨소시엄은 2007년 11월 용산 국제업무지구 입찰 당시 코레일 소유 부지 35만6492㎡에 대한 매입가 8조원을 써내 낙찰 받았다. 3.3㎡(1평)당 7418만원으로 당시 코레일이 제시했던 최저금액 3.3㎡당 5378만원보다 2000만원 높았다. 이번에 현대차는 한전부지 7만9342㎡를 10조5500억원에 낙찰 받았다. 3.3㎡당 4억3879만원으로, 한전이 제시한 감정가 3조3000억원의 3배였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사업 시작 6년 만인 지난 4월 좌초됐다.

현대차그룹 측은 현재 ‘한전부지 매입 논란은 끝났다’는 입장이지만, 국내외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현대차그룹 이사회 결정이 총수일가의 독단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비판했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1개 면 전체를 할애해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을 둘러싼 비판 등을 소개하며 재벌의 가족중심 경영체제와 인색한 배당, 복잡한 지배구조 문제를 다뤘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