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운전면허 도로주행시험에선 파란신호등이 켜져 사거리를 지나갈 때 앞만 보고 가면 불합격이다. 혹시라도 신호를 무시하고 올 수도 있는 차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왼쪽으로 고개를 충분히 돌린 뒤(교차로를 지날 때 왼쪽 방향에서 차가 먼저 온다) 사거리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눈으로만 좌우를 봐도 감점이다. 교민들은 아기에게 도리도리를 가르치는 것 같다고 해서 일명 ‘도리도리’라고 부른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안전 분야에서 30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도로사망률 등 안전 관련 지표들이 좋지 않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안전과 관련한 시설이나 교육이 미흡하고 문화도 정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 수준은 100점 만점에 17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교통사고로 5000명이 목숨을 잃고 32만명이 다치는데 사망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부주의라는 통계도 있다.
1992년 미국에서 고령의 할머니가 맥도날드에서 49센트에 산 뜨거운 커피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맥도날드의 ‘드라이브 스루’(자동차를 탄 채 음식을 사가는 곳) 판매대에서 커피를 샀다가 너무 뜨거워 엎지르는 바람에 발목이 데여 흉터가 남았다.
할머니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자동차 안에서 운전 중에 마실 수 있도록 커피를 판매하면서 너무 뜨거운 커피를 팔아 안전을 소홀히 했다는 것. 법원은 맥도날드 측에 손해배상금 16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 48만 달러 등 총 64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후 맥도날드는 커피의 온도를 낮췄고, 다른 커피판매 업체들도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를 컵에 써 넣었다.
정쟁과 보혁 대결로 전락한 세월호
지난달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 현장에서 일어난 환풍구 붕괴 사고를 놓고 일부에서는 성인들이 왜 위험한 환풍구에 올라갔느냐며 본인 과실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사전에 모든 잠재된 위험을 일일이 헤아려 행동할 수는 없다. 길거리에도 환풍구가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돼 있고 불법도 아니다. 메릴린 먼로도 뉴욕의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역사에 남는 사진촬영을 했다.
수천 명이 몰리는 대규모 판교 행사에서는 당연히 환풍구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거나 안전요원을 배치했어야 했다. 선진국에서는 간단한 도로공사를 할 때도 충분히 차단 장치를 설치하고 안전요원이 배치된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천재지변이나 우발적인 충돌사고도 아니고 정부와 해운회사의 안전관리 소홀 때문에 맥없이 침몰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로 어린 학생들이 물속으로 잠기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분노는 끓는 냄비 같았고 이내 본말이 전도됐다. 세월호는 정쟁과 보혁 대결의 대상이 됐다. 세월호 얘기 자체를 지겨워하면서 안전 문제까지 뒷전이 됐다. 안전에는 여야가 없고 진보와 보수가 없는데도 우리 사회는 어느 사안이든 편을 갈라 갈등하는 고질적인 버릇이 있다. 이래 가지고선 보혁 갈등의 복판에 어떤 보편적 가치를 던져 놓아도 기어이 두 동강이 날 것이다.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시작해야
세월호 참사가 난 지 200일이 지났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과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등 이른바 ‘세월호 3법’을 일괄 타결했다. 이는 진상규명과 안전을 향한 시작에 불과하다. 특검과 진상조사위 구성 및 활동을 둘러싸고 정쟁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논란이 됐던 재난 총괄기구 ‘국민안전처’ 출범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보여준 해경과 정부의 무능, 무책임을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대국민 발표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는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jsshin@kmib.co.kr
[돋을새김-신종수] 국민안전처 신설된다는데
입력 2014-11-04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