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성패를 가르는 찰나를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사안이 중요할수록, 기회가 적을수록 타이밍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 만연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너진 무역장벽, 국내 정치의 제로섬게임, 이웃 간 얇아지는 안전판 등 환경도 녹록지 않다. 와중에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도약을 위한 경제 살리기, 인간의 절대적 가치, 참다운 이웃 등 중요한 가치들은 목전의 과제들이다. 노벨상을 거부했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인간의 절대성을 포기하고 끝내 ‘인간은 B(출생)와 D(죽음) 사이의 C(선택)’라고 했다. 눈앞의 선택 과제 중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문제들이 관심 밖에 있다는 초조함을 지울 수 없다.
먼저는 골든타임이다. 연말까지로 시한을 정한 한·중 FTA는 협상 중인 지금 실익을 챙기지 못하면 국제관례상 재협상도 힘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이 세대에 사과하지 못하면 일본은 용서받을 기회조차 영영 잃는다.
내부적으로 국회에는 경제 살리기, 창조경제, 안전 관련 입법안 등 8000여건이 계류돼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본안만 통과되고 후속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진퇴를 할 수 없는 법안들도 있다. 각종 법안이 때를 놓치는 사이 피해는 관련자들과 국민에게 돌아간다. 유럽은 또다시 재정위기가 염려되고 미국은 양적완화의 종료를 선언했다. 무역의존도가 가장 심한 중국 경제는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경쟁자로 변했고 성장세도 하향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글로벌 경제 여건이 어두운 지금은 우리 경제에 있어 놓칠 수 없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절대적 존엄에 대한 간절함이다. 세월호 사고 후에는 사건을 접하면 사고의 성격을 묻지 않고 사상자 수를 묻는 경우가 잦다. 무슨 사고가 왜 났는지 경과를 따지기보다 “사상자가 몇 명이니 다행이다”라는 대답은 존재에 대한 가벼움을 지울 수 없다. 이러다간 정말로 ‘사람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론’에서 생명의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서 절대적 존엄의 대상이지 비교나 선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살률 OECD 국가 중 단연 1위, 우울증 환자 670만 명이라는 통계치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 안에 꿈과 희망, 야망과 욕망, 시기와 분노를 가득 안은 채 우리 삶이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모른다. 높은 빌딩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인생들이 참으로 ‘개미 인생’ 같다. 삶의 굴곡이 다를 뿐 인간에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삶)’는 모두 한가지인데도 말이다.
신뢰할 수 있는 선한 이웃이다. 어려울 때 선뜻 손을 내밀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인생이란 메아리와 같아 제 가족, 제 목소리만 키워 제 몫을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주변에는 복수의 기회를 찾는 이웃이 많아지게 된다. 그래서 배려와 공감, 소통의 틀이 중요하지만 최근 잇단 대형 사고로 소통채널의 권위도 많이 손상돼 정보의 정당성을 이제는 스스로 확인하려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선택의 여지없이 세월호를 타야 한다. 항해 중 높은 파도를 만나거나 암초에 부딪힐 때도 극복은 그 배에 승선한 승객의 몫이다. 바꿔 탈 수는 있어도 내려서 멈출 수는 없는 게 인생 항해다. 한 지붕 아래서도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사회에서 선한 이웃 관계의 복원은 갈수록 요원해 보인다.
마을도서관, 시민축제, 공원이나 놀이터 문화 활성화 등으로 ‘만나는 자리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그룹 힐링의 처방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중국 송대 유학자 주자(朱子)의 10가지 훈계 가운데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가 있다.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는 뜻이다.
명정식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기고-명정식]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
입력 2014-11-04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