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용산 기지 잔혹사

입력 2014-11-04 02:26

땅에도 타고난 팔자가 있다던가. 용산 미군 기지를 보노라면 미상불 허튼 소리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곳은 우리 민족이 수난을 겪을 때마다 외국 군대의 주둔지가 돼 왔다. 멀리는 13세기에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이,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병자호란 때와 조선말 임오군란 때에는 청나라 군대가, 조선말과 일제 때는 다시 일본군이 이곳과 인근을 주둔지로 또는 병참기지로 사용해 왔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이곳을 접수해 주둔하다 한때 철수했으나 한국전쟁 후 다시 접수하여 지금은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1만여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곳이 매번 외국 점령군들의 주둔지가 됐던 것은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서 육로와 수로 모두로 접근이 용이한 곳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가 이곳의 팔자를 고되게 만들었다. 한·미 양국은 우여곡절을 거쳐 2016년까지 연합사령부와 8군사령부 등을 모두 평택으로 이전키로 합의했다. 한국정부는 2017년부터 미군이 이용하던 기지 243만㎡(약 73만평)를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었다. 기지를 돌려받으면 남산과 이곳과 한강을 잇는 녹지축을 조성하고, 이곳을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돼 한 해 4000만명이 찾는다는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모델로 명품 도심공원으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지난달, 당초 내년 말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이양 시기를 사실상 무기 연기키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키로 했던 연합사령부와 8군사령부 등을 용산 기지에 잔류시키기로 합의했다.

독립국가의 군사주권 문제로서 한·미 간에 합의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공약했던 전작권 반환 시기를 무기한 미룬 것도 문제이긴 하나 국가안보상 고육지책이라니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연합사와 8군사령부 등이 현 기지 내에 잔류키로 한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용산 기지가 완전 반환된다는 것은 숱한 민족 수난사와 함께했던 이곳이 민족의 품안으로 돌아온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곳을 반환키로 한·미가 합의한 2004년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도 “한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 기지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곳에서 연합사나 8군사령부 등이 모두 떠나고 그 자리에 문화유산으로 남을 만한 공원이 조성되면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는 금자탑이 될 것이다.

미국 측 요구대로 연합사와 8군사령부 등이 옮겨가지 않으면 기존에 미국 측이 사용하기로 했던 면적과 합쳐 기지의 17% 정도인 약 44만㎡(14만여평)가 여전히 미군기지 등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공원 조성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공원 조성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수립돼야 한다. 수도 한복판에서 외국군이 모두 떠날 것으로 알았으나 그렇지 않음으로써 민족의 자긍심에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시민들에게 과연 세계적 명품 공원이 조성되긴 하겠느냐는 의구심과 실망감을 줄지도 모른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도 “전작권 전환이 연기돼도 연합사를 현 용산 기지에 두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군 고위 관계자도 연합사가 이전해도 작전 지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었다. 이러한데도 연합사 등이 현 위치에 남기로 한 것은 미국 측의 강한 요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문제가 갖는 여러 가지 의미를 깊이 새겨 용산 기지에서 미군이 모두 옮겨가 이곳이 완전히 민족의 품안으로 들어오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합사 등이 용산 기지에 남더라도 그곳에 근무할 인원은 수백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제의하는 대로 그들이 국방부 영내에 있는 합참 신청사 등을 이용토록 설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터이다. 필자의 어머니 말씀이 팔자도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했다. 용산 기지도 이참에 고된 팔자에서 벗어나게 하자.

백화종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