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상담사가 된 ‘주먹짱’ 한수, 꿈이 생겼다

입력 2014-11-03 05:45
한수(가명)가 지난달 2일 어둠이 짙게 내린 강원도 원주시내를 걸어 귀가하고 있다. ‘강원짱’으로 불리며 여러 사고를 쳤던 한수는 위(Wee)스쿨을 수료한 뒤 상담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원주=이병주 기자

국민일보는 ‘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시리즈(1월 6일∼3월 10일)에서 학교이탈 청소년의 실태를 살폈고, ‘꿈나눔 캠프’ 캠페인(3월 10일∼현재)을 통해 위기의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봤다. 이제 ‘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주제로 유형별 해법을 모색한다. 취재팀은 1년여간 학생·상담교사 100여명을 인터뷰하며 아이들의 응어리를 풀 정서적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기사는 8회에 걸쳐 게재된다.

“싸움해본 적은 없어요. 두들겨 패본 적은 많아도.”

한수(가명·18)는 강원도에서 아주 유명한 폭력학생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선수였던 터라 건장한 성인에게도 뒤지지 않는 완력을 자랑했다. 굵은 목과 팔뚝, 큼지막한 주먹에는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었다. 특히 원주에서는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친구 5명과 몰려다니며 아이들을 때리고 금품을 빼앗았다. 오토바이 폭주를 즐겼고 자동차를 훔치기도 했다. 학교는 가고 싶을 때만 갔다.

한수의 비행은 야구를 그만두면서 시작됐다.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유망한 투수였다. 경쟁자에게 뒤지지 않으려 몸을 혹사한 게 화근이었다. 어깨가 망가졌다. 재활은 프로선수에게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경제적 부담도 상당하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한수는 야구선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고를 치고 다닐 때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말썽만 피운 자신의 탓으로 여겨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한수는 원주에서 ‘강원짱’으로 불렸다. 강원도에서 가장 주먹이 세다는 뜻이다. 폭력조직이 한수와 친구들을 주목했다. 조직 가입 제의를 받았고 친구 5명 중 1명은 정식 조직원이 됐다. 한수도 조직폭력배가 될 뻔했지만 위(Wee)스쿨을 만나면서 운명의 궤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위스쿨은 위기학생 상담·치유 전문기관이다. 담임교사는 한수를 다른 아이들과 떼어놓으려고 위스쿨을 권했다. 한참 폭력조직 가입을 고민할 때 한수는 선생님의 설득에 일단 위스쿨을 택했다.

의외였다. 위스쿨 상담교사들은 한수에게 보조교사를 시켰다. 리더십이 있다고 판단해 ‘임무’를 준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는 시도였고 교사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주먹짱’ 한수는 조금씩 변했다.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을 통솔하고 상담에도 참여하더니 야구가 전부였던 그에게 ‘상담교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한수는 “어른들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이 나를 움직였다”고 말했다.

한수는 위스쿨 수료 후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원주의 친구들과 떨어지기 위해 일부러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태백 지역 학교로 진학했다. 대입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위스쿨과 다른 상담기관에서 ‘또래 상담자’로 활동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달 원주에서 한수를 인터뷰하며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위기학생들은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주변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아이를 키우는 건 가정과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하는 일이다. ‘내 아이, 내가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