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이어폰이 청각 장애인을 후원하는 팔찌로 변신했다. 한양대 행정학과 이민지(24·여)씨와 같은 과 후배 지향은(23·여)씨, 성균관대 시각디자인과 안채원(22·여)씨가 만든 아이디어 상품이다. 원가(2500원)만 공개하고 가격을 정하지 않은 채 팔았는데 취지에 동감한 소비자가 몰려들면서 ‘대박’이 났다.
이들이 판매하는 팔찌는 폐이어폰에 색색의 원단을 입혀 재탄생시킨 ‘히어링(hearing·사진)’. ‘Hear(듣다)’와 ‘Ring(고리)’을 합성한 이름이다. 한쪽이 고장 나 들리지 않는 이어폰이 아까워 계속 사용하다 ‘청각장애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2일 “작은 고민에서 시작한 폐이어폰 팔찌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8월 서울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과 한양대 성균관대 등에 폐이어폰 수거함을 설치해 3주 만에 이어폰 300여개를 모았다. 이어폰에 씌울 원단으로는 페트병에서 뽑아내 만든 친환경 소재를 썼다. 검은색·초록색·흰색 원단을 씌워 꼰 폐이어폰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액세서리로 다시 태어났다.
판매는 주로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SNS나 명동 벼룩시장을 통해 이뤄졌다. 소비자들은 폐이어폰 팔찌 하나에 적게는 5000원부터 많게는 3만원까지 값을 쳐줬다. 판매 닷새 만에 76만7000원을 벌었다. 판매 수익금은 AUD 사회적협동조합에 전액 기부했다. 이 협동조합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말소리를 타자로 쳐서 스마트폰 등으로 볼 수 있게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한 대기업이 주최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이들은 이를 발전시켜 본격적인 사업으로 만들 계획이다. 폐이어폰 장식도 이제는 천 대신 체인과 비즈(작은 구슬) 같은 부자재를 써서 더 다양하고 화려하게 디자인하려 한다. 이씨는 “청각 장애인을 돕는다는 본래의 취지를 유지하면서 ‘히어링’을 더욱 다양화해 대중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청각 장애인 돕는 도구로 고장 난 이어폰의 재탄생
입력 2014-11-03 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