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1818∼1883)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남겼죠. 오늘날 사람들에겐 노동이 아편이 된 것 같아요. 삶에 대한 통찰 없이 쳇바퀴 돌 듯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래요.”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연극 ‘히에론, 완전한 세상’(포스터)의 작가 마리오 살라자르(34·사진)는 이같이 말했다.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독일의 젊은 극작가 살라자르는 “권력 아래 자유롭지 못한 한국에선 내 작품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은 창조자 히에론과 노동자 알렉산더 가족의 이야기다. 매일 정해진 양의 일을 하고 1년 중 단 하루, 크리스마스이브에만 휴식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 그려진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는 알렉산더와 이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부인 카트린은 부딪힌다. 말이 없는 아들 유리와 사회가 자신의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아 처형당하게 된 딸 막다, 그리고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들의 지루한 삶을 바라보는 히에론은 점차 무기력해진다. 일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맹목적인 목표를 가진 인간, 이들을 바라보는 신의 시선이 날카롭게 표현된다. 작품은 지난해 독일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초연할 당시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와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담아 눈길을 모았다.
베를린 출신인 살라자르는 아홉 살 때 통일을 맞았다. 베를린장벽 옆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눈앞에서 벽이 무너지고 사회가 합쳐지는 모습을 지켜본 셈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회의 분열과 통합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열일곱 살 때부터 글을 써왔지만 ‘육체노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바텐더, 이삿짐센터, 고아원에서 일하면서 사회 속에서 살려 노력했죠. 작품의 주제 또한 노동입니다. 재밌는 것은 어느 사회나 노동문제가 논의선상에서 오르지만 이를 말하는 사람들은 ‘진짜’ 노동자보다는 한 계층 위, 중산층이라는 거예요.”
그는 “창조자 히에론이 경제적으로 사회를 키운다면 권력이 유지될 거라고 믿었던 모습, 그리고 스스로 그 시스템에 굴복하는 모습 속에서 ‘권력은 나눠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독일문화원과 예술경원지원센터가 기획한 ‘한-독 커넥션 사업’을 통해 독일을 방문한 극단 여행자 대표 양정웅(46) 연출을 통해 한국 공연이 성사됐다. 양 대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끌렸다. 권력이 주는 외로움,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8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한다. 전석 3만원(02-889-3561∼2).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창조자도 싫증나버린 무결점의 완벽한 세상
입력 2014-11-03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