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떠났고, 많은 말들이 세상에 남았다. 아니 그는 떠나지 못했다. 세상은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다. 그의 육신은 부검대 위에 누웠다.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다. 심정지 후 불과 5일 만에 닥친 신해철의 죽음을 보며 그가 6년 만에 새 앨범을 들고 당당한 포부를 밝혔던 그날이 떠올랐다.
초여름 더위가 빨리 찾아왔던 지난 6월 20일 오후 4시. 신해철은 서울 마포구 홍익로 한 공연장에서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파트 1’ 음악감상회를 가졌다. 수록곡 하나하나를 상세히 소개하는 그의 언변은 화려했고 전성기 때의 그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타이틀곡 ‘A.D.D.A(아따)’는 신해철다운 노래였다. ‘생긴 대로,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지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그대로’라는 노랫말, 해학과 흥겨움이 가득한 분위기가 그랬다. 게다가 그는 이 노래에 나오는 모든 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만 채웠다. 1000번 이상 중복 녹음하고 스스로 엔지니어링과 믹스까지 한 ‘지독한’ 작품이다. 이 같은 ‘원 맨 아카펠라’는 고도의 보컬 실력과 다양한 표현력이 없이는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그날 이후 그는 오랜 공백을 깨고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앨범 제목처럼 그는 ‘리부트’하고 싶었을 거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신해철에게 맞춰진 초점은 공들인 음악이 아니라 외모였다. 못 보던 사이에 체중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완벽을 추구한 음악을 들고 오랜만에 나온 게스트에 대한 대접으론 가혹해 보였다. tvN ‘SNL 코리아’가 게스트의 약점을 감싸기보단 오히려 부각시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심한 느낌이었다. 신해철 편에서는 ‘예전엔 턱이 두 개였는데 이번엔 세 개’라는 식의 비아냥, 심지어 ‘돼지 X끼’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MBC ‘라디오 스타’에서 신해철 등이 나온 편의 부제는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역변해 버린 노래하는 목들-No목들 특집’이었다. ‘역변’은 연예인의 외모가 시간이 지날수록 망가지는 것을 말한다.
노래가 아닌 체중으로 더 관심을 받았지만 그는 제2의 전성기를 향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신해철이 쓰러진 후 그가 2009년 위밴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충격이었다. 그가 신해철이기 때문이다. 신해철마저 위밴드 수술로 내몰리는 사회! 위밴드 수술은 고도비만 환자의 체중감량을 위한 수술이다. 그가 이 수술을 꼭 받아야 할 정도로 고도비만이었을까.
그동안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발언을 해왔다.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도 루키즘(외모지상주의)은 기본적으로 옳지 못한 태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세상의 편견에 맞서 늘 당당했던 그마저도 다이어트를 권하는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노래와 작곡 실력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던 거다.
우리 사회에서 외모에 대한 관심은 병적일 정도다. 연예인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신해철도 이런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수많은 멋진 말을 남긴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트윗이 ‘다이어트 3주간-1차 프로그램 종료’였다니 안타깝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우리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가 ‘리부트’를 시도했을 때 우리는 그의 음악보다는 달라진 외모에 수군거렸다. 여러 계획을 세우고 많은 꿈을 꾸었던 그가 황망하게 갔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반성도 있길 바란다.
그의 사인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밝혀지길 원한다. 고인이 하나님 안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한승주 산업부 차장 sjhan@kmib.co.kr
[뉴스룸에서-한승주] 신해철 죽음에 대한 단상
입력 2014-11-03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