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중대선거구’ 급부상…지역주의 허물까

입력 2014-11-01 04:08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수십년 유지된 소선거구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대신에 선거구 한 곳에서 2∼3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가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차기 대권주자들 사이에선 권역별 정당명부제와 석패율제도 거론된다. 크게 보면 개헌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의 ‘3김시대’가 남긴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이 선거구 조정에 그칠지, 헌재발(發) 핵폭탄을 정치개혁 에너지로 발전시킬지는 미지수다.

승자독식 구조와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가 가진 가장 큰 폐해로 꼽힌다. ‘영남당’이라 불리는 새누리당과 ‘호남당’이라 불리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텃밭을 꿰차고 앉아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구도다. 한 명씩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서는 영남에서 새정치연합이,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되기 어렵다. 지난 7·30재보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곡성)은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26년 만에 호남 지역주의를 깼다.

때문에 선거구를 묶어 2∼4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지역주의가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 명을 뽑다 보면 인물 중심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3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당장 정개특위를 가동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문재인 의원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새정치연합은 영·호남 지역구도 아래서는 다수당이 되기 어렵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신중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흘러간 옛 노래”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적지 않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대선거구제를 지지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대선거구제냐 석패율로 가느냐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석패율 제도는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근소한 차로 낙선할 경우 비례대표로 당선시켜 정당의 지역대표성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대선거구제 등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지금보다는 지역주의가 완화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만으로 지역주의가 저절로 완화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나눠먹기로 변질될 수 있다. 영·호남에서는 ‘새누리당 2중대 혹은 새정치연합 2중대’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석패율이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기준을 놓고도 또 다른 ‘게리맨더링’이 발생할 수 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