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하정우, 처벌 받을까요?… 금쪽같은 시간 쪼개 ‘영화 속 법 이야기’ 펴낸 高3 학생들

입력 2014-11-01 02:09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방송 앵커인 윤영화(하정우 분)는 서울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를 받고도 단독 보도를 하고 싶은 욕심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를 이용했다. 만약 실제 사건이라면 윤영화는 테러 가능성을 신고하지 않은 대가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까.

오는 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고3 학생들이 책을 냈다. 그것도 어렵고 딱딱할 것만 같은 ‘법률’ 책이다. 인천국제고 3학년 남장현(18) 박주현(18) 전혜지(18·여) 학생이 24일 출간한 ‘재미있다 영화 속 법 이야기’(사진)는 어렵게만 여겨지는 법률 조항을 30편의 영화 속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들이 살펴본 윤영화 처벌 가능성은? 행동은 괘씸해도 처벌할 조항이 없다고 한다. 남군은 31일 “테러 범죄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처벌토록 하는 테러방지법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어 처벌받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들은 고교 3년간 한 번도 같은 반인 적이 없었지만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뭉쳤다. 교내 법률 동아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법무부 정책 블로그 기자단으로도 함께 활동했다. 법무부에서 주최한 모의재판 경연대회와 생활법 경시대회에 참가하며 법 지식을 쌓기도 했다.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겨울방학이다. 누군가 “우리 책 한번 써볼까”라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무작정 인터넷을 찾아보다 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하는 2014년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을 발견했다. 남군은 “지난해 고등학생 한 명이 출판 공모 사업에 당선돼 책을 낸 사례가 있어서 우리도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존에 나온 법 해설 서적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영화로 법을 소개한 책이 눈에 띄었는데 고전 외화 중심인 점이 아쉬웠다. 전양은 “학생들이 봤을 만한 영화들 중심으로 소개한다면 좀 더 쉽게 법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우리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를 중심으로 액션·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방향을 잡고 나니 공모 기한이 코앞에 닥쳤다. 1차 마감인 5월까지 전체 원고의 70%를 작성해 보내야 했다. 4월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세 명은 집필에 매달렸다.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밤에 기숙사로 돌아오면 글을 썼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거나 휴일에 몰아서 작업을 했다.

‘입시 준비’와 ‘책 쓰기’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쉽지 않았다. ‘과연 책이 완성될 수 있을까, 그 시간에 수능 공부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박군은 “아버지께서 외부활동 그만하고 이제 공부에 신경 쓰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마지막 고등학교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완성된 책에는 그동안 쏟은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들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나오는 결혼생활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해 웨딩 잡지를 섭렵했다. 영화 ‘역린’을 다루면서 역대 왕의 경호실 명칭을 찾기 위해 각종 역사책을 뒤졌다.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을 찾아가 함께 판결문을 분석하기도 했다.

남군과 박군은 검사, 전양은 환경 전문 변호사가 꿈이다. 세 명 모두 아직 대학 진학이 결정되지 않아 곧 수능을 치른다. 꿈을 이루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