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우리는 어김없이 이런 질문과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 슬며시 가슴 한 곁을 채우고 들어오는 것이 근심과 걱정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어려운 문제를 차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지라도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면 근심과 걱정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근심과 걱정에 대해 명확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의심 많은 제자인 도마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명답을 제시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6∼7)
이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만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세 가지(참 선지자, 참 왕, 참 제사장) 직분 가운데 하나인 ‘참 선지자’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는 참 선지자, 사탄의 권세를 꺾으신 참 왕,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죄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신 참 제사장이라는 세 가지 직분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인생사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부릅니다. 위의 요한복음 말씀은 그 사실을 우리들에게 확인시켜 주는 멋진 대목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영원히 사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들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곧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여기서 ‘오직’이란 단어 때문에 기독교는 배타적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합니다. 이럴 때 타협을 하면 좋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직’ 이외에 다른 형용사를 사용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다른 길은 없을까요?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외부의 신이나 다른 권위를 빌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신을 믿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말하곤 합니다. 유교 인문학의 기초로 불리는 율곡의 ‘격몽요결’ 맨 처음에 나오는 말은 “너는 이미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동양고전 전문가인 한형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유교에서 성인은 기독교의 성인과 다르게 자기 자신과 자연성을 최고조로 발휘한 사람을 말합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된 사람, 자신의 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성숙한 인간입니다. 이는 종교가 아니라 ‘인문학’ 훈련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생활을 통해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일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도 자기 계발에 때해 꽤 많은 서적들을 집필한 사람입니다. 이론뿐만 아니라 내 삶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열정적으로 해 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완전한 인간에 다가갈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서양 고전을 공부하다가 성경 속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노력, 그 지극한 갈고 닦음이 완전한 인간으로 가는 길에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노력으로 완전함의 성취는 ‘불가’하다는 잠정적인 답을 얻은 상태입니다. 인간이 완전함을 향해 나아갈 때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배경에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내면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죄성 때문입니다. 내가 범한 죄만이 아니라 타고난 원죄와 조상이 지은 죄들까지 첩첩히 쌓여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완전함’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가도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는 자의 대열에 늦깎이 성도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부터 나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연구를 해 온 사람이지만 그 길이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늦게 깨우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인간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함에 도달할 수도 없고 참다운 평화를 누릴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잠정적인’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세상에는 많기 때문에 그 분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학식이나 수련 그리고 나이 듦이나 지위 등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죄성을 치유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나서부터 출세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간에 우리 모두가 ‘긍휼’한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공병호경영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오직’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입력 2014-11-01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