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루크 노엘 前 세계보건기구 이식담당관 “장기기증운동, 기증자 중심으로 바꿔야”

입력 2014-11-03 02:56
전 WHO 이식담당관 루크 노엘 박사가 대한이식학회의 한 학술모임에 참석해 장기기증운동이 왜 수혜자보다는 기증자 중심으로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서영희 기자

“장기기증 운동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수혜자한테 초점을 맞추는 현행 방식으로는 기증 희망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다. 생명을 살리는 기증 행위에 초점을 맞춰 기증 희망 서약을 한 이들을 아낌없이 격려해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다.”

대한이식학회(이사장 이석구 삼성서울병원 교수) 주최로 31∼1일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장기이식 및 기증 활성화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 세계보건기구(WHO) 이식담당관 루크 노엘(62) 박사의 조언이다.

노엘 박사는 1일 심포지엄에서 이식 대기자 수가 날로 늘어나 문제가 되는 한국의 장기기증 및 이식 문화에 대해 수혜자 중심의 홍보 및 계몽 전략이 잘못 낳은 사생아와 같다며, 선진 장기기증문화의 정착을 위해 기증자를 존중하는 쪽으로 모든 기증절차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장기기증원과 한국인체조직기증재단에서 장기기증과 인체조직기증 업무를 각각 분리, 관장하는 문제다. 두 기관이 장기와 조직을 따로 관리하다보니까 한 명의 기증자가 자신의 장기와 인체조직을 모두 기증하고자 할 때도 두 기관에서 절차를 따로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증자 선정부터 장기 및 조직이 얻어지는 기증 전 과정이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증자 중심의 포괄적 기증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음은 우리나라 장기기증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노엘 박사와의 일문일답.



-장기이식은 생명을 잇는 거룩한 의료행위다. 하지만 이식 대기자는 많고 장기 기증자가 많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다. 우리는 모두 사회인이다. 다수의 개인이 모인 사회 속에선 언제든지 기증자가 수혜자가 되고, 수혜자가 기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장기기증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이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장기기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유럽의 경우 초등학교 후반기부터 중학교 과정 중 장기이식에 대한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교육을 통해 개인이 사회 속 일원임을 깨닫게 하고, 동시에 장기기증을 이타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장기이식이 가장 활발한 나라다. 장기기증이 병든 사회와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지속적으로 계도해 나가야 한다. 장기기증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인식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초등학교 후반부 또는 중학교 초반부에 반복 교육을 하면 장기기증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이점이 있다. 아이를 통해 역으로 부모에게도 생명 나눔 정신을 전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장기기증 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기증과정에서 절차상 투명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뇌사자 장기기증은 기증과 동시에 그 장기를 이용, 새 생명을 얻는 수혜자가 즉각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체조직 기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불특정 다수 수혜자에게 이식되기 때문에 비윤리적으로 취급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인체조직은 가공 단계를 거쳐 ‘치료재’로 상품화돼 경제적 이익이 창출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집단의 사익 도모 수단이 되지 않게 투명한 절차 관리 및 운영, 감시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다.”

-장기와 인체조직을 따로 관리하는 게 좋은가.

“장기와 조직은 원칙적으로 인체로부터 얻어지는 치료자원이다. 한 사람의 기증자가 장기 따로, 조직 따로 절차를 밟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누구라도 장기든, 조직이든 기증 절차를 밟을 때는 조금의 불편함도 없게 편의를 최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옳다. 장기기증으로 좋은 일 하려는데, 수혜자 또는 공급자 위주로 처리돼 기증자가 불편을 느끼게 되면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가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유럽의 경우 장기기증절차는 전적으로 기증자 편의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