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⑤ ‘다릅나무 십자가’ 제작 채현기 목사

입력 2014-11-03 02:48
지난달 23일 강원도 고성군 동호교회에서 만난 채현기 목사. 그는 지금까지 8000개 넘는 다릅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보급했다. 채 목사는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허란 인턴기자

채현기(59) 목사에게 강원도 고성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고무친의 땅이었다. 처음 그의 눈에 비친 고성은 모든 게 낯선 고장이었다.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어서 거리엔 무시로 무장한 군인들이 오갔고 바닷가 곳곳엔 철책이 설치돼 있었다. 이전까지 살던 서울과는 확연히 달랐다.

채 목사는 1998년 10월 31일 고성군 간성읍 변두리에 위치한 동호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던 대학 후배가 서울로 목회지를 옮기면서 채 목사에게 동호교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을 동경한 채 목사는 아내와 세 딸을 데리고 고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예상보다 더 무료했다. 동호교회는 성도가 20여명인 작은 교회였다. 교회에 있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노상전도를 해도 행인이 없어 허탕치기 일쑤였다. 그리고 고성에서의 첫겨울이 시작됐다. 문득 그는 대학시절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에서 봤던 십자가 목걸이가 떠올랐다. 껍질을 벗기면 겉은 희고 속은 갈색인 다릅나무로 만든 십자가였다.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다릅나무를 구해 십자가나 만들어 볼까.’ 그는 인근 야산을 돌아다니며 다릅나무를 구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3일 동호교회에서 만난 채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에너지는 넘치는데 할 일은 없던 시절이었죠.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갑자기 십자가가 생각났습니다. 목공을 배운 적은 없지만 원래 손재주가 있어서 만드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작은 다릅나무 십자가를 만든 뒤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서서히 다릅나무 십자가의 매력에 빠졌다. 나무의 속살에 새겨진 나이테는 하나님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채 목사는 벽걸이용 십자가를 가리키며 다릅나무 십자가 예찬론을 펴나갔다.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세요. 나무에서 은은한 빛이 납니다. 나이테의 문양도 특별하지 않나요? 하나님이 만든 바람 햇볕 물을 받아먹고 만들어진 무늬지요. 가끔 예수님의 형상으로 짐작되는 문양이 나타날 때도 있어요. 이렇게 매력이 많으니 이 나무에 정신을 뺏길 수밖에 없었죠(웃음).”

지인들이나 성도들에게 다릅나무 십자가를 선물하기 시작한 지 3년쯤 지나자 알음알음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채 목사는 십자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십자가 제작의 주종(主宗)은 탁상용 십자가와 벽걸이용 십자가. 채 목사는 이들 십자가를 만드는 데 매진했고 지금까지 8000개 넘는 다릅나무 십자가를 보급했다.

“나무를 깎고 구멍을 뚫다 보면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느꼈을 고통을 짐작하게 되는 거죠. 십자가를 만들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채 목사가 십자가 만들기에 전념한 또 다른 이유는 생계였다. 동호교회는 성도 대부분이 노인인 가난한 교회였기에 이곳에서 목회를 하며 아내와 세 딸을 건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십자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자 1년에 10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십자가를 만드는 것을 장삿속으로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혹 십자가 수백 개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올 때도 있었는데 상대가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단번에 거절했다.

“저도 인간이니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십자가를 2000∼3000개 만든 뒤 판로를 개척해 팔면 목돈을 만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십자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다릅나무 십자가는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 가져야 한다고.”

채 목사는 이날 인터뷰 내내 “십자가가 없었다면 진작 고성을 떠났을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우리 가족이 이곳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라는 말도 했다.

“가끔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혼자 이곳에서 시위를 한다는 생각으로 16년을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만들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거죠. 돈이나 조직으로 세상을 상대해선 안 된다고, 복음으로 돌아가 십자가의 뜻을 전하는 게 목회자의 삶이라고.”

고성=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