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겸손과 진정성 있는 삶으로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소명 받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소명은 우리 삶 전부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지난달 29일 한국을 처음 방문한 마크 레버튼(61) 미국 풀러신학교 총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교회 위기의 본질은 예수님처럼 말과 행동이 하나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레버튼 총장은 지난해 7월 제5대 총장으로 선출돼 교과과정을 개정하는 등 학교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를 위한 하나님나라 직업(global kingdom vocation)’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기독교 학문을 현실 세계에 적용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자는 게 변화의 핵심이다.
그는 최근 ‘제일소명’(IVP)이란 책을 펴내 예수의 제자 된 삶을 보여주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으뜸 되는 소명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며 “이는 목회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당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일종의 공포가 있었다. 종교를 가지면 창의성이나 기쁨, 사회참여도 못하고 오로지 신앙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였던 그의 부친도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종교는 삶을 축소시킨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예수님 역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풍성한 신앙을 협소하게 만든다며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삶을 축소한다고 믿는 지식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생각과 지성, 마음을 확장시킨다. 만약 여러분이 기독교 세계 안에 들어온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 정의가 어떻게 이 세계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볼 것이다. 신앙은 지성을 억압하지 않는다. 더 풍성히 한다”고 했다.
레버튼 총장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제일장로교회(PCUSA)에서 16년간 담임목사로 활동했다. 풀러신학교와는 2009년 ‘존 오길비 설교 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그는 특히 세계 복음주의의 거장이었던 존 스토트 목사의 연구조교를 지냈다. 30년 전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칼리지에서 처음 만난 게 계기였다. 이후 스토트 목사가 설립한 존스토트미니스트리와 랭함파트너십 등 단체와 긴밀히 협조해 왔다. 그는 스토트 목사에게 겸손과 청빈을 배웠다고 했다.
“스토트 목사는 미얀마 출신의 친구 목사가 인도에 사는 자기 어머니를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인도의 마드라스에 갔습니다. 집주소가 없어서 몇 시간을 헤맸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집은 낡고 어두운 판잣집이었습니다. 스토트 목사는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를 만났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전했습니다. 사랑과 위엄으로 가득한 설교였습니다. 이 장면이 놀라웠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자 설교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낡고 비천한 집을 찾아 한 명의 여성 앞에서 설교했던 것입니다. 스토트 목사는 영국 최상류층 출신이었지만 기독교인이 된 이후엔 낮은 자와 함께했습니다. 항상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레버튼 총장이 강조하는 소명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교리가 아니라 변화된 삶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 예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날 선 충고도 덧붙였다. “요즘 미국교회 신자들 중엔 성공한 목사나 부자를 닮으려 하지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레버튼 총장은 지난해 7월 논란이 됐던 풀러신학교 동성애 동아리(클럽) 인정과 관련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풀러신학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이성에 의한 결혼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합니다. 이는 학생이나 교직원이 공동으로 인정하고 사인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논란이 됐던 동아리는 동성애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포함해 성에 관한 이슈를 토론하는 모임이었으며 토론은 풀러신학교 공동체의 규율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번역상의 오류로 인한 오보였습니다.”
그는 한국교회로부터 배우고 싶다고도 했다. “한국교회를 존경하는 입장에서 협력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적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많은 공헌을 했고 앞으로도 공헌할 것입니다. 미국교회가 배울 게 많습니다.”
풀러신학교는 1968년 설립된 초교파적 복음주의 신학교다. 교회성장학의 기초를 놓은 도널드 맥가브란과 피터 와그너를 비롯해 랄프 윈터, 폴 피어슨 등 세계적 선교신학자들이 거쳐 갔다. 한국인 학자로는 김세윤(신약학) 교수가 활동 중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신앙은 지성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입력 2014-11-01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