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 시절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수사·기소한 수사기관이나 유죄 판결을 선고했던 법관의 직무행위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970년대 유죄 판결을 받은 서모씨와 장모씨 및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에 대한 위헌 선언 이전에 법령에 기초해 수사를 진행하거나 공소를 제기한 행위, 이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행위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당사자가 재심에서 무죄가 입증됐다면 유죄 판결에 따른 복역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로 옥살이를 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가혹 행위나 증거조작 등 불법행위가 드러났을 경우에만 국가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두 사람은 계명대에 재학 중이던 1976년 6월 헌법 폐지를 주장·선동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됐다. 이들은 수사관들에게 구타·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허위자백을 했고, 이후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이후 2004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자 재심을 청구해 2012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번 판결로 서씨와 가족들은 모두 3억3000여만원, 장씨와 가족들은 모두 4억8000여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긴급조치를 근거로 한 수사나 재판 자체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 대해 “사실상 유신체제에 면죄부를 준 반역사적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긴급조치 9호 따라 수사·재판 불법행위 해당한다 볼 수 없다”
입력 2014-10-31 03:04